배명훈 장편소설 '고고심령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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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심령학적 관찰을 통해 고고학적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하는 학문. SF작가 배명훈(39)이 설정한 '고고심령학'의 사전적 정의다. 쉽게 말하면 옛날 사람들의 언어를 재구성하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옛날 사람들의 말을 직접 들어보는 거라는 얘기다.
배명훈의 다섯 번째 장편소설 '고고심령학자'(북하우스)는 고고심령학의 대가였던 문인지 박사가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시작된다. 그의 제자 조은수는 천문대에 있던 스승의 서재를 정리해 3차원 디지털 지도를 만드는 작업을 한다. 그러던 중 서울 한복판에 갑자기 출몰하는 높이 수십 미터짜리 검은 성벽을 목격한다.
성벽은 카메라 렌즈에 포착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들은 성벽의 존재를 인지하고 반응한다. 그때마다 자살하는 이들이 생기고 성벽은 사회문제로 떠오른다. 서울이 멸망할 위기에 처한 가운데 조은수와 동료 김은경, 한나 파키노티 박사가 성벽을 둘러싼 의문들을 고고심령학의 방법으로 풀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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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복판에 의문의 성벽이 나타난다는 설정, 성벽 출현을 일종의 심령현상으로 전제하고 출발하는 문제해결 방식, 천문대에 나타나는 1천500년 전 어린아이의 혼령. 과학소설보다 판타지나 미스터리에 가까운 소재들이 가득하다.
하지만 "우주선이 나오고 우주에서 싸우는 소설"만 과학소설이 아니다. 과학소설가 정소연은 "과학소설이 말하는 과학은 과정으로서의 과학, 합리성으로서의 과학"이라고 말한다. 작가는 합리성과 거리가 먼 소재들을 고고심령학이라는 학문의 틀 안으로 가져와 논리적 정합성을 부여한다.
외국어가 모국어처럼 들리는 '몬데그린 현상' 등 깨알 같은 지식과 함께, 도시와 공간에 대한 작가의 통찰이 돋보인다. 328쪽. 1만4천원.
dad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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