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토분쟁 재부상…美 "분쟁 휘말릴라" 난처
(자카르타=연합뉴스) 황철환 특파원 = 미 해군 소속 이지스 구축함의 유조선 충돌사고와 관련해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가 서로 자국 영해에서 벌어진 사고라며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실종자 수색을 진행하면서 양국 사이의 바위섬 페드라 브랑카(말레이시아명 바투 푸테)의 영유권을 둘러싼 해묵은 다툼에 불이 붙었다.
25일 현지 언론과 외신에 따르면 두 나라는 지난 21일 미 7함대 소속 알레이버크 구축함 존 S. 매케인(DDG-56)이 믈라카 해협에서 라이베리아 선적 유조선 알닉MC와 충돌해 수병 10명이 실종되자 대대적인 수색·구조 작전을 벌였다.
말레이시아는 사고 해역에 군함 4척과 다수의 함정을 배치하는 등 500명이 넘는 병력을 투입했으며, 싱가포르 역시 헬리콥터 5대와 항공기 5대, 300여명의 인원을 동원해 수색을 벌였다.
싱가포르 경영대 법학과의 유진 탄 교수는 "두 나라가 이처럼 적극적인 태도를 보인 이면에는 분쟁 해역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강화하려는 의도가 깔렸다"고 지적했다.
존 S. 매케인함은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양국의 영유권 분쟁 대상인 페드라 브랑카로부터 불과 8.5㎞ 떨어진 지점에서 알닉MC와 충돌했다.
싱가포르 해협의 남중국해쪽 입구에 있는 가로 137m 세로 60m 크기의 이 바위섬은 싱가포르가 실효지배하고 있지만, 싱가포르보다 말레이 해안에 더 가까운데다 역사적으로도 말레이시아 조호르 주의 전신인 조호르 술탄국의 영토였다.
그런 까닭에 두 나라는 1965년 싱가포르가 말레이시아 연방에서 제외된 이래 해상교통의 요지인 페드라 브랑카의 영유권을 두고 줄곧 다툼을 벌여 왔다.
국제사법재판소(ICJ)는 2008년 페드라 브랑카가 싱가포르 영토에 속한다고 판결했으나, 말레이시아는 식민통치 시절인 1958년 영국과 싱가포르 식민지 행정당국이 작성한 문건 등을 근거로 올해초 ICJ에 해당 판결의 개정을 요구한 상황이다.
두 나라가 경쟁적으로 장비와 인력을 투입한 덕분에 미국 해군은 실종자 수색에 상당한 도움을 받았지만, 자칫 영유권 분쟁에 말려들 처지가 됐다.
현재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는 존 S. 매케인함 충돌 사고의 조사 관할권을 어느 국가가 갖느냐는 문제를 두고 힘겨루기를 벌이고 있다.
싱가포르는 이미 사고 해역의 지도를 공개하며 자국 영해에서 발생한 사고라고 주장했다. 말레이시아 해양 당국 관계자는 "이 문제와 관련해 국토부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사고 수습을 지휘해 온 스콧 스위프트 태평양함대 사령관은 지난 22일 기자회견에서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중 어느 국가가 조사를 담당하게 되느냐는 질문에 "현재 중요한 것은 실종 선원의 구조"라며 답변을 피했다.
한편, 미 해군 7함대는 전날 성명을 통해 실종 수병들에 대한 수색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함대 측은 10명의 실종자 중 매케인함의 폐쇄된 격실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1명을 제외한 나머지 9명을 최종 실종 처리했다고 설명했다.
hwangc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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