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베카 솔닛 " '여혐' 반응은 페미니즘이 힘 얻고 있다는 반증"

입력 2017-08-25 14:42   수정 2017-08-25 15:02

리베카 솔닛 " '여혐' 반응은 페미니즘이 힘 얻고 있다는 반증"

'맨스플레인' 용어 유행시킨 작가…"큰 그림 볼 때 분명히 긍정적인 변화"

신간 '걷기의 인문학'·'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 출간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수천 년간 계속된 여성차별의 문제를 50년 사이에 완벽하게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하고 좌절해서는 안 됩니다. 큰 그림을 볼 때 분명히 긍정적인 변화를 볼 수 있습니다. 한국의 젊은 페미니스트들에게 우리가 승리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요."

여성들에게 시시콜콜하게 설명하려 하는 남성들의 모습을 지적한 '맨스플레인'(Man+explain)이란 말을 유행시킨 책 '남자들은 나를 자꾸 가르치려 한다'의 작가이자 환경·반핵·인권운동가인 리베카 솔닛(61)이 한국을 찾았다. 신간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창비 펴냄)와 '걷기의 인문학'(반비 펴냄) 출간을 기념해서다.

'걷기의 인문학'은 걷는 사람과 걷는 모임, 걷는 장소들, 걷기의 형태와 종류, 걷기를 소재로 한 문학과 예술, 걷는 신체의 구조와 진화, 자유롭게 걸을 수 있는 사회적 조건 등 걷기의 거의 모든 요소와 측면을 고찰하며 역사, 철학, 정치, 문학, 예술비평 등 광범위한 분야의 사유를 담았다.

'남자들은…'의 후속작격인 '여자들은…'에서는 침묵 당하기를 거부하는 여성들, 남성 페미니스트, 여성혐오범죄, 강간에 대한 농담 등에 대한 에세이들을 모은 책이다.






그는 25일 서울 서교동 창비 사옥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두 책 모두 저항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걷기의 인문학'은 자꾸 육체에서 벗어나고 실내에 국한된 활동을 하고 인터넷 세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현상에 저항하는 의미로 쓴 책입니다.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고 다양한 세상을 누비며 불확실성 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들을 직접 경험하면서 쓴 책이죠. '여자들은…'은 페미니스트 혁명에 있어 새 시대가 도래하는 상황 속에서 젊은 여성들에게 참여의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 쓴 책이에요. 일반적으로 말하는 좋은 삶, 여성에게 좋은 삶에 대한 기존의 생각들에 의문을 제기하고 행복이 인생의 중요한 목적으로 타당한 것인가 그런 통념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하고 싶었습니다. 두 책 모두 아직 하지 못했던 이야기, 그동안 우리의 시야를 가렸던 것을 탐색해 가는 이야기죠. 영어에 '브레이킹 더 스토리'(breaking the story)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원래는 '속보를 전하다'라는 의미인데 저는 '브레이크'라는 단어에 주목해 '오래된 이야기들을 깨뜨린다'는 의미로 쓰기를 좋아합니다. 두 책 모두 오래된 스토리를 깨뜨린다는 점에서도 공통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행동하는 페미니스트 지식인'으로 평가받는 솔닛은 이날 간담회에서 최근 한국에서도 활발한 논의가 이뤄지는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강남역 살인사건'이나 여성 BJ에 대한 살해 위협 등 한국의 '여성 혐오' 현상과 이에 대한 사회의 반응에 대한 질문을 받고 "어느 정도 들어서 알고 있다"면서 "페미니즘이 힘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한국에서 벌어진 상황들이 낯설고 기이한 것이었으면 좋겠지만 이런 일들은 미국에서도 비슷하고 친숙합니다. 남성들이 이런 반응을 보인다는 것은 남성들이 페미니즘에 위협을 느끼고 있는 겁니다. 반발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페미니스트들의 일이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고 있음을 보여주는 반증이죠."






그는 '여성 혐오' 등에 대한 대응책으로 "사안을 정확하게 규정하고 올바른 이름을 붙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현상을 아주 명쾌하게 가시적으로 드러나게 해주고 절대 용납할 수 없음을 효과적으로 전달해야 합니다. 성폭행 피해여성들이 피해를 호소할 때 그들의 탓으로 돌리거나 서로 상관없는 개별적인 사건인 것처럼 치부해왔던 것을 타파하고 각각의 일들이 패턴으로 연결돼 있음을 알리는 캠페인 등이 필요합니다. 살해위협에 대해서는 범죄로 인정하도록 하는 노력도 있어야 하고요. 여성을 대상으로 한 폭력을 명확히 규정하고 남성의 책임을 엄중히 묻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는 이어 페미니즘 운동이 그동안 많은 성과를 거둬왔음을 상기시켰다.

"많은 이들이 페미니스트들의 운동이 아직 미완성이고 여전히 끔찍한 여성인권유린이 일어나고 있다는 부분을 지적하죠. 그러나 저는 수천 년간 계속된 여성차별의 문제를 불과 50년 사이에 완벽하게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하고 좌절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6개월이나 1년 단위의 시간을 보면서 '변화가 없다', '실패했다'고 단정하기 쉽지만 긴 시간을 놓고 볼 때, 큰 그림을 볼 때 분명히 긍정적인 성취나 변화를 볼 수 있습니다."






솔닛은 한국의 젊은 페미니스트들에게 "우리가 승리하는 중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고 했다.

"계속 우리의 수가 늘어나면 힘이 세질 겁니다. 제가 더 젊었던 시절에는 페미니즘 자체가 여성들이 추구해야 할 것이라고 규정됐죠. 하지만 성차별 문제 해결은 여성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해방이기도 합니다. 역사를 돌아봤을 때 우리는 계속 승리하고 있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한편 그는 "한국에서 대통령 탄핵 비법을 배우고 싶다"며 도널드 트럼프 정부를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지금 미국의 백악관은 여성혐오, 강간문화가 존재하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한 백인우월주의나 기독교우월주의에 국한되지 않고 남성성을 강화하며 여성의 권한을 빼앗고 과거의 성 역할로 여성을 복귀시키려 하는 문화와 생각을 하는 곳이 현재의 백악관이 아닌가 합니다. 트럼프가 당선됐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그로테스크하고 부끄러운 상황이죠. 한국에 올 때 대통령 탄핵 비법을 배워오겠다고 하고 왔어요.(웃음)"

zitron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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