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은 청탁에 따른 이익 향유할 위치…대통령 요구 거절 못 해"
"최지성·장충기는 이재용이 후계자로 자리잡는 게 임무라고 생각"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강애란 기자 =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선 실세' 최순실씨 측에 433억 원의 뇌물을 약속하고 이 가운데 298억여 원을 건넨 혐의 등 5개 혐의로 구속기소 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김진동 부장판사)가 징역 5년을 선고했다.
함께 기소된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장과 장충기 전 미전실 차장에겐 각 징역 4년, 박상진 전 삼성전자 사장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황성수 전 삼성전자 전무에게는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번 사건의 본질을 "정치 권력과 자본 권력의 부도덕한 밀착"이라고 규정하며 유죄 판단 근거 및 양형 이유를 밝혔다.
◇ 삼성 피고인 5명의 양형 이유
재판부는 먼저 이 부회장을 비롯한 삼성그룹 전·현직 임원들에게 공통으로 적용된 양형 이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이번 사건은 이건희 회장 이후를 대비해 이재용의 경영권 승계를 꾸준히 준비하던 이재용을 비롯한 삼성 임원들이 우리나라 경제 정책에 관해 막강하고 최종적 권한을 가진 대통령에게 승계작업 도움을 기대하며 거액의 뇌물을 지급하고 삼성전자 자금 횡령, 재산 국외 도피, 범죄수익 은닉으로 나아간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 국민은 헌법상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에 대해서 그 권한이 국민 전체의 이익을 위해 행사되리라 기대한다"며 "대기업에 대해서는 합법적이고 건전한 경제활동을 통해 국민 경제에 이바지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할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최서원(최순실)의 국정농단 사건으로 드러난 이 사건을 보면서 국민은 대통령의 직무 공정성, 청렴성에 근본적 의문을 가지게 됐고 삼성의 청렴성에 대해서도 불신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특히 "대통령과 대규모 기업 집단의 정경유착이란 병폐가 과거사가 아닌 현실이란 점에서 신뢰감과 상실감을 회복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며 "피고인들이 삼성을 대표하는 임원들이란 점에서 우리 사회와 경제에 미친 영향력이 크다"고 질타했다.
재판부는 이 부회장 등이 거액의 뇌물을 공여하고, 범죄를 은폐하기 위해 조직적으로 사실관계를 왜곡했다는 점에서도 비난 가능성과 불법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다만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대통령에게 적극적, 명시적으로 청탁하고 뇌물을 공여한 것이 아니라 대통령의 적극적인 지원요구에 수동적으로 응하여 뇌물을 공여했다"며 이를 유리한 양형 요소로 봤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이 최순실씨와 공모해 세 차례 단독면담을 통해 이 부회장에게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지원요구를 했으며, 이 부회장은 승계에 관한 도움을 기대하면서 승마 지원과 영재센터 지원을 지시해 요구에 응했다고 판단했다.
다만 이 과정이 오로지 이 부회장만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점은 비난 가능성을 완화하는 요소라고 봤다.
◇ 이재용 부회장 양형 이유
재판부는 이 부회장의 역할과 관련해 "청탁의 대상이었던 승계작업으로 인한 이익을 가장 많이 향유할 지위에 있는 사람"이라며 가장 무거운 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재용은 사건 당시 삼성그룹의 사실상 총수로서 다른 피고인들에게 승마 지원과 영재센터 지원 등을 지시하고 범행을 촉진하는 역할을 지시했다"며 "실제 범행에 가담한 정도나 미친 영향이 크다"고 지적했다.
또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에서도 자신의 범행을 감추기 위해 허위 증언을 했다"고 질책했다.
다만 이 부회장이 뇌물공여 의사 결정을 내린 배경에 대통령의 요구가 있었다는 점을 유리한 양형 요소로 봤다.
재판부는 "이재용은 대통령의 적극적인 요구에 수동적으로 응했던 것"이라며 "대통령의 요구를 쉽사리 거절하거나 무시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부회장이 개별 현안을 대통령에게 청탁했다거나 그 결과로 자신이나 삼성그룹에 부당하게 유리한 결과를 얻었다는 사실이 확인되지 않았고, 승계작업 추진이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란 점도 유리한 양형 요소로 참작했다고 밝혔다.
◇ 최지성·장충기 양형 이유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던 최 전 실장과 장 전 차장에게는 "삼성그룹 의사 결정 구조의 정점에 있는 사람"이라며 이날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재판부는 "이들은 이 부회장으로부터 승마와 영재센터 지원에 관한 대통령의 요구사항을 전해 듣고 뇌물공여, 횡령, 범죄수익 은닉, 재산 국외 도피 등을 기획하고 실질적인 의사 결정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재용이 사실상 총수로서 승마 및 영재센터 지원 등을 지시하고 각 범행을 촉진하는 역할을 했다면, 이들은 이재용과 긴밀하게 연락해 각 범행이 실현될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가담 정도가 상당히 무겁다"고 질타했다.
다만 최 전 실장과 장 전 차장은 수십 년간 삼성그룹에 몸담아온 직장인으로서 이 부회장의 승계작업이 성공한다고 해도 직접적인 이익을 누릴 지위에 있지 않다는 점을 유리한 양형 요소로 봤다.
재판부는 "이들은 이재용이 삼성그룹의 후계자로서 자리 잡는 것이 자신들의 임무수행 일환이라고 생각하고 범행에 가담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박상진·황성수 양형 이유
박 전 사장과 황 전 전무에 대해서는 "승마지원 과정에서 최순실 등과 직접 교섭하며 구체적인 지원 계획을 짜고 실행했다"고 질책하면서도 "의사 결정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들은 승마지원의 실무자로서 범행에 가담한 것이고 횡령에서도 주도적인 의사 결정을 했다고 볼 수 없다"며 "핵심적인 실행행위를 했을 뿐, 전체적인 범행의 기획이나 핵심적인 의사 결정에는 관여하였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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