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 승마에 비상한 관심…김종에 '정유연' 언급"
"안종범에 崔와 공유한 내용 불러줘…이상화 인사 지시, 유력한 간접사실"
(서울=연합뉴스) 송진원 기자 = 법원은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의 뇌물공여 혐의를 유죄로 인정하면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선 실세' 최순실씨가 뇌물수수 범행을 공모했다고 판단했다.
27일 이 부회장의 판결문에 따르면 재판부는 뇌물수수 공범 사이에 직무와 관련해 금품이나 이익을 수수하기로 하는 명시적 또는 암묵적 공모 관계가 성립하고, 공범 중 한 명이 금품을 받았다면 뇌물수수죄의 공모공동정범(공범)이 성립된다고 봤다.
수수 금품이나 이익의 규모, 정도에 대해 사전에 연락을 주고받거나 구체적 금액을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이런 전제하에 박 전 대통령과 최씨가 삼성 뇌물을 받기로 공모한 근거들을 제시했다.
◇ 박근혜, 승마 지원에 비상한 관심
재판부는 대통령이 3차례에 걸친 이 부회장과의 면담에서 꾸준히 승마 지원을 언급한 대목을 눈여겨봤다.
특히 2차 면담인 2015년 7월 25일 승마 지원 부실을 질책하며 대한승마협회의 임원 이름까지 거론하면서 교체를 요구한 것은 이례적이라고 판단했다.
안종범 전 수석의 2016년 1월 12일자 업무수첩에 '승마협회, 마사회, 이재용 부회장 인사, 승마협회장-현명관 회장 연결 승마협회 필요한 것 마사회 지원, 올림픽 대비 선수 말 구입, 삼성계획→전부 지원' 등이 적힌 것도 대통령이 구체적인 지시를 내린 증거로 봤다.
재판부는 "대통령은 이처럼 유독 승마 선수들의 올림픽 출전을 위한 지원, 삼성전자의 승마협회 운영 등에 관해 비상한 관심을 보였고 승마 선수 지원 현황과 협회 운영 상태를 지속적으로 인식·파악하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 김종 "대통령이 정유연 언급해 깜짝 놀라"
재판부는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이 박 전 대통령에게서 직접 "정유연"(정유라)이라는 이름을 들었다는 점도 주목했다.
김 전 차관 진술에 의하면 박 전 대통령은 2015년 1월 9일 안민석 의원이 제기한 '정유라 특혜 의혹'과 관련해 "정유연이 같이 운동을 열심히 잘하는 선수를 자꾸 기를 죽이냐"고 말했다.
김 전 차관은 대통령이 '정유연' 이름을 직접 거론하는 것을 듣고 대통령이 최씨와 매우 가깝고 그 딸인 정유라를 아낀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증언했다. 삼성전자가 승마협회를 맡는 것도 최씨와 정유라 때문이라는 직감을 했다고도 진술했다.
◇ 2차 독대 당일을 기록한 안종범 수첩
재판부는 안종범 전 수석의 2015년 7월25일자 수첩 내용도 공모를 뒷받침하는 증거로 판단했다.
당일 수첩엔 '1.제일기획 스포츠담당 김재열 사장 메달리스트 빙상협회 후원 필요', '2. 대한항공 기업활동 프랑크푸르트 지점장 고00 신망', '3. 승마협회 이영국 부회장 권오택 총무이사-임원들 문제, 예산 지원, 사업 추진 X, 위 두 사람 문제→교체 김재열 직계 전무' 등이 적혀 있다.
재판부는 이 내용이 모두 최씨와 관련된 사항이라는 공통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즉, 대통령이 안 전 수석에게 7월 25일 단독 면담 이후 통화에서 이 사항들을 한꺼번에 전달했는데, 대기업 총수 단독 면담에 앞서 최씨와 공유했던 사항들을 별도로 추려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는 얘기다.
◇ 최순실은 삼성 승마 지원 먼저 알았다
최씨는 2015년 7월 23일 독일에서 귀국한 직후 측근인 박원오 전 대한승마협회 전무에게 전화해 "삼성에서 승마를 지원하기 위해 승마협회 회장이 연락할 것이니 만나 이야기해 보라"고 말했다.
김 전 차관도 같은 날 박상진 전 삼성전자 사장에게서 "대통령께서 이 부회장에게 정유라 선수를 2020년 도쿄올림픽에 나갈 수 있도록 지원하라는 지시를 하셨다. 이제 본격적으로 정유라를 지원할 계획이다"라는 말을 듣고 최씨를 만나 알려줬다.
그러나 최씨는 이미 삼성의 지원 사실을 알고 있다면서 "다 내가 했는데 차관이 한 게 뭐가 있느냐"고 짜증을 냈다는 게 김 전 차관 진술이다.
재판부는 "최서원은 피고인들이 박원오에게 승마 지원 의사를 명시적으로 밝히기 전, 김종이 승마 지원 계획을 전달하기 전에 이미 삼성의 지원 소식을 알고 있었다"며 "최씨가 이런 정보를 피고인들로부터 직접 받았거나 대통령을 비롯한 청와대 구성원에게서 받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했다.
◇ 이상화 인사 챙기고 박상진에 감사 인사
박 전 대통령이 이상화 전 독일 하나은행 프랑크푸르트 지점장의 인사 문제에 개입한 것도 공모 증거로 꼽혔다.
박 전 대통령은 2015년 11월 하순께 안 전 수석에게 독일에서 귀국하는 이상화를 하나은행 본부장급으로 승진하도록 지시했다는 게 특검 주장이다.
재판부는 "대통령이 승마 지원이 이뤄지던 시점에 최서원으로부터 이상화에 관한 얘기를 듣고 인사에 관한 부탁을 들어줬다는 사실은 공모 관계를 추단할 수 있는 유력한 간접사실"이라고 했다.
이 밖에 최씨가 박상진 전 사장에게 2016년 5월께 "삼성에 뭐 도와드릴 게 있으면 말씀하세요"라고 말한 점, 박 전 사장이 대통령의 에티오피아 순방에서 같은 헤드테이블에 앉았고 그 자리에서 대통령이 악수를 청하며 "특별한 관심을 보이고 싶었다"고 말한 점 등에 비춰 대통령과 최씨가 당시에도 계속 연락을 주고받았을 것이라고 했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과 최씨가 차명 휴대전화로 수시로 연락을 주고받은 점, 박 전 대통령이 40년 지기인 최씨의 국정 운영 개입을 용인하며 청와대 기밀문서 등을 전달한 것도 공모를 뒷받침한다고 판단했다.
박 전 대통령이 승마협회 조사에 나선 당시 문체부 노태강 체육국장과 진재수 과장을 가리켜 최씨의 말을 듣고 "참 나쁜 사람이라고 하더라. 인사조치하라"고 말한 대목도 공모 근거로 적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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