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 광고판' 인기 얻자 주민투표 추진…일자리 놓고 논란도
(제네바=연합뉴스) 이광철 특파원 = 스위스 제네바에서 상업광고판을 금지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제네바는 올해 1월 3천여 개의 '백지 광고판'이 갑자기 등장했다.
시민이나 여행객은 특정한 주제와 관련된 자기 생각이나 의견을 자유롭게 광고판에 표현할 수 있다. 그림을 그려도 된다.
사실은 사용 계약 문제 때문에 '백지 광고판'이 등장했지만, 일부 광고판은 시민이 그린 그림으로 예술작품처럼 되면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거리 곳곳에 시민이 직접 꾸민 광고판이 등장하자 시민단체들이 아예 상업광고판을 금지하자는 주민투표를 제안하고 나섰다.
공영 스위스앵포는 지난달 주민투표 청원에 나선 이 단체들이 11월 7일까지 4천 명의 서명을 받으면 투표가 성립된다고 28일(현지시간) 전했다.
주민투표 추진 단체들은 상업광고판에서 자유로운 도시의 풍경을 시민에게 되돌려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역 기업, 상점에서 마련하는 문화행사 홍보 등은 허용하는 방향으로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주민투표 청원에 나선 루카 루이조니는 "텔레비전, 라디오는 끌 수 있지만, 상업광고판을 앞에 두고 눈을 감은 채 걸을 수는 없다"며 "제네바가 다른 도시들보다 더 합리적이기는 하지만 시선을 강요하는 광고판을 피해 가면서 살 수는 없다"고 말했다.
광고판이 다국적 기업, 자동차 회사들의 광고에 활용되고 정작 지역 기업이나 상점은 이용할 수 없다는 점도 주민투표 추진의 배경이 됐다.
반면 광고판 판매 대행사 측은 "광고판은 그래픽 미술가와 인쇄 기술자 등 많은 노동자의 일자리를 만들고 있다"며 '위험한 신호'라고 비판했다.
스위스앵포는 상업광고판이 금지되면 시 재정에서 300만∼600만 스위스프랑(35억∼70억원)의 손실이 발생한다고 전했다. 시 연간 예산 10억 스위스프랑(1조1천700억 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적지만 단순한 문제는 아니다.
한 광고판 판매 대행사 관계자는 "상업광고판이 금지되면 광고는 구글이나 페이스북으로 몰릴 테고 결국 그 돈은 미국이 가져간다. 그게 그들이 진정 원하는 거냐"고 말했다.
상업광고판을 막으려는 도시가 제네바가 처음은 아니다. 브라질 상파울루는 2007년 '클린시티법'을 제정해 옥외 광고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1년 동안 간판을 철거했다가 2012년부터 부분적으로 다시 허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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