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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이웅 기자 = "단죄는 아니더라도 잘못된 과거를 철저히 조사하고 밝혀야 앞으로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을 겁니다."
박근혜 정부 때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압력 때문에 문화체육관광부 본부 주요 보직에 있다가 외곽 소속기관으로 밀려난 한 문체부 과장의 얘기다.
작년 5, 6월께 비슷한 일을 겪은 문체부 국·과장은 모두 6명. 이른바 '문체부 살생부'에 올라 화를 입은 피해자들이다.
당사자들도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기소된 우병우 전 민정수석비서관의 재판에 최근 증인으로 출석했다가, 심문과정에서 인사 전횡의 내막을 알게 됐다고 한다.
몇 주 전 재판에 다녀온 한 국장은 "정말 어이가 없다"며 "민정이 절차를 무시하고 문체부 인사에 개입한 것 자체가 명백한 직권남용이라고 보지만, 얼토당토않게 꾸며낸 얘기를 확인도 없이 인사 근거로 삼았다는 게 놀라울 뿐"이라고 했다.
특검 수사와 장시호씨, 김종 전 차관의 증언 등으로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사실을 종합해 보면, 문제의 '살생부'는 지난해 2월 박민권 당시 문체부 1차관의 뒷조사를 해달라는 최순실씨의 요청에 김 전 차관이 측근인 윤모 문체부 과장을 통해 수집한 소문을 토대로 작성한 메모가 발단이 됐다.
김 전 차관은 장씨를 통해 청와대에 전달한 메모에 박 전 차관뿐 아니라 자신에게 비협조적인 6명의 국·과장을 헐뜯는 내용도 포함시켰다. 민정수석실은 이 메모를 근거로 박 전 차관에게 사직을 종용하는 한편 김종덕 당시 문체부 장관에게 국·과장 6명에 대한 좌천 인사를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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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민정수석실은 국내 스포츠산업 육성 방안을 찾고자 미국에서 열린 세계골프산업박람회 견학을 지시한 문체부 간부를 외유성 골프 출장을 추진한 것으로 왜곡했다. 또한 민정수석실 검증까지 거쳐 대통령이 재가한 1년 전 인사를 부정한 특혜성 인사라며 문제 삼은 것으로 드러났다.
문체부 감사관과 중앙징계위원회까지 하자가 없다고 판단한 소속기관 보조금 관리 업무가 부정하게 처리됐다며 트집을 잡고, 박근혜 대통령이 관심을 가졌던 국립중앙박물관의 '프랑스 장식미술전' 무산에 대한 책임을 엉뚱하게 묻기도 했다.
장식미술전은 시중에서 판매되는 명품 가방을 미술전에 전시하게 해달라는 프랑스 측의 무리한 요구를 국립중앙박물관이 수용하지 않아 무산됐는데, 관여하지도 않은 문체부 국·과장이 복지부동한 탓이라고 책임을 전가한 것이다.
민정수석실은 윤 과장의 협조를 얻어 이 같은 내용을 기정사실화해 문체부에 압력을 행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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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1일 우 전 수석 측 증인으로 재판에 나온 윤 과장은 다른 핵심증인들과 상반되는 진술을 하다 법정에서 재판부의 압수수색 명령까지 받았다. 특히 윤 과장은 심문과정에서 자신이 초안을 작성한 '살생부' 내용을 옹호하기도 했다.
6명의 국·과장은 청와대의 부당한 압력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일에 문체부 내부의 적극적인 공모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씁쓸해하고 있다. 윤 과장은 지난 2월 문체부에서 소속기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국가적 이슈가 된 '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는 특검과 감사원 조사에 이어 최근 문체부가 민관합동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면서 진상 규명과 대책 수립에 속도가 붙고 있다.
하지만 국정농단으로 인한 문체부의 내부 상처는 여전히 아물지 않은 채로 있다. 지난해 말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뒤 잠시 관심을 받는 듯했으나 이내 잊혀졌다.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블랙리스트 피해 예술인들과 달리, 문체부 내부의 농단 피해자들은 공직에 있는 탓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분위기다.
지난주 출범한 문체부 조직문화혁신위원회가 역할을 해주기를 바라는 기대가 크다.
한 과장은 "문체부가 국민에게 사랑받고 신뢰받는 조직으로 거듭 나기 위해서라도 조직을 일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abullapi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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