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보돈 경북대 교수 '가야사 새로 읽기'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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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한반도 동남부에 있었던 고대 국가인 가야는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월 언급하면서 화제가 됐다. 정부는 가야사 복원을 위한 조사·연구를 100대 국정과제로 정하기도 했다.
그런데 가야사에 붙은 '복원'이라는 단어가 의미심장하다. 그동안 이에 대한 연구가 부실했다는 뜻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가야사는 문헌자료가 턱없이 부족해 고대사에서 소외된 분야였다. 그나마 1970년대부터 발굴조사가 활발히 이뤄지면서 가야사의 비밀을 풀 퍼즐 조각이 조금씩 늘어났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고대사를 전공한 주보돈 경북대 교수가 국내외에 남아 있는 가야 관련 사료와 고고학 자료를 바탕으로 '가야사 새로 읽기'를 펴냈다. 전문적인 내용이 담긴 학술서지만, 가야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쉽게 풀어서 쓴 점이 특징이다.
저자는 가야사에 관한 통념 가운데 5세기 초를 기준으로 전반기는 김해의 금관가야, 후반기는 고령의 대가야가 중심 세력이었다는 주장에 문제를 제기한다. 이 견해는 가야가 시종일관 단일한 연맹체를 구성했고, 4세기 초까지 존재한 것으로 알려진 변한이 전기 가야 연맹이었다는 가정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가야가 단일한 연맹세력을 이뤘다는 사실은 어떤 기록에도 나타나지 않는다"며 "가야는 성립할 때부터 멸망할 시점에 이르기까지 여러 갈래의 정치세력이 분립된 상태로 일관했다"고 강조한다.
그는 "이른바 전기 가야로 명명된 시기가 가야의 모태이기는 하지만, 이때는 가야사보다도 변한사에 넣어서 다루는 것이 적절하다"며 "변한 연맹체 단계에서는 해안가 세력이 주축을 이뤘다면, 가야사회가 출현한 뒤에는 내륙 세력이 크게 성장했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전라도 섬진강 유역에서 발견되는 가야 유적은 고구려 광개토왕이 400년 낙동강 유역에 진출해 수로가 차단당하면서 가야 세력이 서쪽을 개척한 결과라고 설명한다.
저자는 후기에 이를수록 대가야 주도의 통합운동이 진행됐지만 마지막까지 강력한 왕권 국가로 거듭나는 데는 실패했다고 지적하면서 "가야의 공간적 영역은 고정적이지 않았으며, 구성 세력 사이에는 이합집산이 이뤄졌다"고 말한다.
한편 가야가 신라보다는 백제에 우호적이었다는 저자의 주장도 흥미롭다. 이에 대해 그는 "가야가 신라와 낙동강을 공유하고 있었고, 정치적 중심지가 신라와 가까웠다는 점이 작용한 듯하다"고 추정한다.
주류성. 308쪽. 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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