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 공개수배·제보…15년 미제 살인사건 범인 덜미(종합2보)

입력 2017-08-31 15:58   수정 2017-08-31 16:27

페이스북 공개수배·제보…15년 미제 살인사건 범인 덜미(종합2보)

경찰, 2002년 부산 사상구 다방 여종업원 살인사건 해결

피해자 유족 울면서 "범인 잡혔으니 이제 편안하게 쉬어"

(부산=연합뉴스) 민영규 기자 = 2002년 부산 사상구에서 발생한 다방 여종업원 살인사건 피의자가 무려 15년여 만에 경찰에 붙잡혔다.

자칫 미제로 묻힐 뻔한 이 사건은 경찰이 페이스북으로 용의자를 공개수배한 것을 본 시민의 결정적인 제보와 경찰의 끈질긴 수사 덕분에 해결됐다.




부산경찰청 미제사건 전담수사팀은 살인 등의 혐의로 양모(46·당시 31세) 씨 등 3명을 붙잡아 양 씨를 구속했다고 31일 밝혔다.

양 씨는 2002년 5월 21일 오후 10시께 부산 사상구 괘법동의 한 다방에서 퇴근한 여종업원 A(당시 21세) 씨를 납치해 청테이프로 손발을 묶고 흉기로 가슴 등을 수십 차례 찔러 숨지게 한 뒤 시신을 마대자루에 담아 부산 강서구 명지동 바다에 버린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또 다음날 낮 12시 15분께 부산 사상구의 한 은행에서 A 씨의 통장에 있던 돈 296만원을 인출하고 같은 해 6월 12일 부산 북구의 한 은행에서 이모(41·당시 26세) 씨 등 주점 여종업원 2명을 시켜 A 씨의 적금 500만원을 해지해 챙긴 혐의를 받는다.

경찰은 현금 인출에만 가담한 것으로 조사된 이 씨 등은 사기, 사문서위조, 위조사문서행사죄로 처벌할 수 있지만 공소시효(10년)가 지나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양 씨가 A 씨를 흉기로 위협해 예금통장 비밀번호를 알아내고 돈을 찾은 직후 살해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때문에 비밀번호가 달랐던 A 씨의 적금통장을 해지하려고 이 씨 등 공범이 A 씨의 주민등록증과 도장을 이용해 비밀번호를 한 차례 바꿨다.

이 씨 등은 당시 은행 직원이 "본인이 맞느냐"고 묻자 윽박질러 비밀번호를 바꿨다고 경찰은 밝혔다.




살인 사건은 2002년 5월 31일 낮 12시 25분께 A 씨 시신이 유기 장소 근처 해안에서 발견되면서 세간에 알려졌다.

당시 양 씨와 이 씨 등이 은행에서 돈을 찾는 모습이 담긴 폐쇄회로TV(CCTV)가 확보됐지만 신원이 확인되지 않았고 지문 등 다른 단서가 나오지 않아 미궁에 빠졌다.

이때도 경찰은 용의자들의 사진을 일부 언론에 공개했지만 결정적인 제보가 없었다.

부산경찰청은 2015년 8월 1일을 기준으로 공소시효가 남아 있는 모든 살인사건의 공소시효(최장 25년)를 폐지하도록 형사소송법(이른바 태완이법)이 개정된 후 미제사건 전담수사팀을 구성하고 본격 보강조사에 착수했다.

부산청 미제사건 26건 가운데 유일하게 용의자 사진이 있었기 때문이다.

종전 법으로도 아직 공소시효가 남아 있어 태완이법이 이 사건과 직접 연관된 것은 아니지만 태완이법 통과 후 미제사건 전담수사팀이 꾸려져 수사가 탄력을 받았다.

부산경찰청은 지난해 2월 25일 용의자들을 공개 수배하면서 페이스북으로 CCTV에 나오는 용의자들의 얼굴을 공개하고 시민의 도움을 요청했다.




이 페이스북 사진은 지금까지 무려 232만명이 봤다.

덕분에 이 씨 등 공범의 사진을 본 지인이 작년 3월 경찰에 제보했고 경찰은 같은 해 4월 5일 이 씨 등 공범 2명을 붙잡았다.

경찰은 이어 이 씨 등이 돈을 찾을 당시 은행 주변 기지국을 경유한 휴대전화 통화기록 1만5천여 건을 정밀 분석해 양 씨의 신원을 파악했고 지난 21일 전격 체포했다고 설명했다.

양 씨는 범행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고 경찰은 전했다.

경찰은 그러나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법영상분석연구소에 의뢰해 CCTV에 나오는 양 씨의 사진과 최근 사진, 돈을 찾을 때 사용한 전표의 필적과 최근 필적을 대조한 결과 동일 인물일 가능성이 크다는 판정을 받았다.

경찰은 또 이 씨가 다른 범죄 피의자 4명과 함께 서 있는 양 씨를 범인으로 지목했고 거짓말 탐지기 조사에서 범행을 부인하는 양 씨의 진술이 거짓으로 나왔다고 밝혔다.

경찰은 특히 양 씨와 동거한 B 씨에게서 "2002년 5월께 양 씨와 함께 둥글고 물컹한 느낌이 있는 물체가 담긴 마대자루를 옮겼고 마대자루 아래로 검은색 비닐봉지가 보였지만 당시 무서워서 어떤 물건인지 물어보지 못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B 씨가 묘사한 마대자루 등의 모양이 피해자 시신이 담겼던 것과 일치했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양 씨가 시신 유기에 사용한 승용차를 중고로 산 C 씨도 경찰에서 "뒷좌석 가죽 시트를 벗기다 핏자국으로 보이는 검붉은 얼룩을 발견했었다"고 말했다.

또 양 씨는 수사관과의 비공식 대화에서는 범행을 일부 시인하고 있다고 경찰은 밝혔다.

경찰 조사결과 양 씨는 2002년 7월 미성년자 성매매 알선혐의로 체포돼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풀려난 뒤 2003년 부녀자 특수강도강간 등의 사건을 저질러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이 때문에 양 씨는 집행유예가 취소돼 모두 9년간 교도소에 수감됐다가 2012년 출소했다.

경찰은 양 씨가 피해자를 납치, 감금하는 데 도움을 준 제3의 공범이 있는지 수사를 계속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15년 만에 범인이 검거됐다는 소식을 들은 피해자 언니는 취재진과 전화 인터뷰에서 "영원히 범인을 못 잡을까 봐 잠도 제대로 못 잤는데 힘들게 노력해서 잡아준 형사분들에게 너무 고맙다"고 말했다.

유족은 또 울면서 "범인이 잡혔으니 이제 (동생이) 편안하게 잘 지냈으면 좋겠고 편안하게 쉬라고 얘기해줄 수 있게 꿈에서라도 한 번 만났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youngkyu@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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