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매부진·노사갈등·인건비 부담 악재…"최대 위기"
(서울=연합뉴스) 윤보람 기자 = 안팎으로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한 국내 자동차 업계가 결국 통상임금이라는 '폭탄'까지 받아들게 됐다.
비록 기아차[000270]에 한해 1심 판결이 나온 것이고 항소심에서 결과가 뒤집힐 수 있지만, 업계는 다른 자동차 관련 기업들의 유사 소송에 영향을 미쳐 도미노식 타격을 미칠 수 있다며 침울한 분위기다.
업계가 일제히 앓는 소리를 하는 것은 글로벌 침체와 어려운 경영환경으로 한국 자동차산업이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최고조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런 우려는 실제 통계로도 확인된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 등에 따르면 지난 상반기까지 한국 자동차의 내수·수출·생산은 2년 연속 감소했다.
올해 상반기 국산 차 수출량(132만1천390대)은 2009년(93만8천837대) 이후 8년래 최저 수준이다.
특히 중국 시장 판매는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갈등의 여파로 1년 전보다 40% 이상 급감했다. 같은 기간 내수 판매도 4% 줄어 증가세가 3년 만에 꺾였다.
이에 따라 상반기 자동차 부품 수출 역시 작년 같은 기간보다 5.8% 줄었고, 공장가동률은 2014년 96.5%에서 올해 상반기 93.2%로 떨어졌다.
박한우 기아차 사장은 지난 22일 자동차산업협회가 주최한 '자동차산업 진단과 대응을 위한 간담회'에서 "2년 연속 차가 덜 팔린다는 것 자체가 위기의 시그널(신호)이라고 본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세계 시장에서 한국차의 위상도 갈수록 추락하고 있다.
지난해 국내 자동차 생산은 2015년보다 7.2% 줄어 인도 다음인 세계 6위로 내려앉았다.
올해는 7위인 멕시코에도 추월당할 처지다. 5년 전만 해도 멕시코에 100만대 가깝게 앞섰던 한국의 자동차 생산은 올 상반기 차이가 10만대선으로 좁혀지면서 턱밑까지 추격당했다.
10년 넘게 독일·일본에 이어 3위를 지켰던 수출도 올해 들어 멕시코에 자리를 내주는 불명예를 안았다.
완성차 5개사 중 현대·기아차는 상황이 더 좋지 않다. 중국 사드 보복의 여파를 가장 직접적으로 겪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005380] 중국법인 베이징현대는 상반기 현지 판매량이 전년 대비 반 토막 나면서 부품 협력업체들에 3.5개월분의 대금 지급을 밀렸다. 일부 업체의 경우 6개월 이상 대금을 못 받았다고 주장하고 나서는 등 협력업체들의 자금난이 심각한 상황이다.
급기야 부품업체 한 곳이 납품을 거부하면서 한동안 현대차 중국 공장 4곳이 모두 가동을 중단하는 사태가 빚어졌다.
비록 전날부터 가동이 재개되긴 했으나 아직 체불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태여서 공장이 추가로 멈춰 설 가능성이 남아 있다.
노사 갈등이 아직 진행 중인 점도 업계에 드리워진 먹구름이다.
완성차 5개사 중 현대·기아차와 한국지엠은 아직 임금·단체협약 교섭을 매듭짓지 못했다. 쌍용차[003620]와 르노삼성이 무분규로 임단협을 타결한 것과 대조적이다.
현대차는 노조가 새 집행부 선출 시까지 교섭을 중단하기로 해 11월에야 협상이 재개될 것으로 보여 경영 불확실성이 당분간 이어지게 됐다.
기아차는 통상임금 소송 선고를 계기로 교섭을 본격적으로 재개할 예정이나 노사 간 이견이 커 상황이 녹록지 않다.
자동차 업계는 위기 상황의 직·간접적 원인으로 인건비 부담을 지목해왔다.
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국내 완성차 5개 업체의 연간 평균임금은 2016년 기준 9천213만원으로 도요타(9천104만원), 폴크스바겐(8천40만원)보다 높은 수준이다.
또 국내 5개사의 매출액 대비 평균임금 비중은 12.2%로 폴크스바겐(9.5%), 도요타(2012년 7.8%)를 웃돈다.
이런 상황에서 통상임금이 확대되고 소급분 지급까지 인정하는 판결이 다른 소송에서까지 이어지면 추가 인건비 부담이 불가피한 만큼 경영상 어려움이 커진다고 업계는 호소하고 있다.
현재 법원에는 이날 선고가 난 기아차를 비롯해 르노삼성을 제외한 완성차 4개사 관련 통상임금 소송이 걸려있다.
부품업체의 경우도 현대모비스[012330], 만도 등이 소송을 진행하는 등 통상임금 리스크가 다수 남아 있는 상태다.
배상근 전국경제인연합회 전무는 "사드 보복, 멕시코 등 후발 경쟁국들의 거센 추격,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가능성 등으로 우리 자동차산업이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며 "이번 판결로 기업들이 예측하지 못한 추가 비용까지 부담하게 돼 산업경쟁력 약화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bryo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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