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의 파트너 바꾸기(?)…美에 거리두고 中에 '한걸음 더'

입력 2017-09-04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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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의 파트너 바꾸기(?)…美에 거리두고 中에 '한걸음 더'

中, 아람코 지분 매입해 사우디와 전략적 협력관계 강화전망





(서울=연합뉴스) 권영석 기자 = 영국의 고위 정보 당국자인 킴 필비는 냉전 시대에 악명을 떨쳤다. 그는 영국과 미국의 기밀을 옛 소련에 넘겼으며 결국 소련으로 망명해 죽을 때까지 모스크바에서 국가보안위원회(KGB) 대령으로 살았다.

그보다는 덜 알려졌지만, 역사에 더 큰 족적을 남긴 사람은 그의 아버지 존 브리저 필비다. 그는 이슬람으로 개종한 뒤 압둘라 필비로 개명했다. 아버지 필비도 스파이였다. 그는 1차 세계대전 당시 동료인 TE 로런스와 함께 아라비아반도에서 오스만 제국에 반대하는 종족 봉기를 선동했다.

아버지 필비는 전쟁이 끝난 뒤 아랍에 대한 영국의 진출을 반대하는 세력을 탄압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그러나 그는 아들과 마찬가지로 등을 돌렸다. 그는 이슬람으로 개종하고 새로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에 오른 이븐 사우드의 고위보좌관으로 변신했다.

이븐 사우드 국왕은 집권 초기 영국의 고객이었기 때문에 통치에 별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아버지 필비는 1936년 이븐 사우드 국왕에게 영국 대신 급부상하는 미국에 충성을 바치자고 설득했다. 그래서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 채굴권 독점권을 영국의 BP 대신 미국의 텍사코와 셰브론에 부여하기로 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영 독점 석유회사 이름이 아람코(아랍-아메리카 석유회사)로 불리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사우디는 이때부터 미국의 고객 국가를 유지했으며 미국과 긴밀한 동맹관계를 맺고 미국의 군사적 지원에 크게 의존했다.

하지만 80년이 지난 지금 압둘라 필비는 또다시 충성을 바쳐야 할 나라를 교체하자고 부추기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왕이 된 이븐 사우드의 아들 살만은 전략적 동맹관계를 미국 대신 급부상하고 있는 중국 쪽으로 전환할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4일 보도했다.

사우디는 아직 미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5월 취임 이후 첫 해외순방국으로 사우디아라비아를 선택했다. 그리고 트럼프 대통령은 1천100억달러 규모의 첨단무기를 사우디에 판매하기로 하는 계약서에 서명했다.






그러나 미국과 사우디 관계는 최근 몇 년간 시들해지고 있다.

특히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인권을 부르짖는가 하면 사우디의 라이벌인 이란과 관계개선 움직임을 보이면서 양국 관계가 악화했다. 게다가 미국이 에너지 안보를 중시하고 중동지역에서 석유 수입을 줄이면서 양국 갈등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반면 중국은 사우디로부터 석유 수입을 배 이상 늘렸다. 결국, 중국의 석유 수입은 올해 초 미국을 추월하며 세계 최대 석유 수입국이 됐다. 지금까지 중국에 대한 최대 석유 공급국은 러시아와 사우디였다. 중국의 석유 수입이 갈수록 늘어나면서 사우디에 대한 석유 수입 의존도는 증가일로다.

이는 사우디의 안정과 안보에 미국보다 중국이 더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사우디와 중국은 양국 관계를 부쩍 강화하고 있다. 살만 국왕은 지난 3월 중국을 방문해 600억달러 규모의 교역투자협정에 서명했다. 그리고 지난달 장가오리(張高麗) 중국 부총리는 지난달 사우디 답방을 통해 200억달러 규모의 합작펀드 설립 계약 등을 체결했다.

중국은 석유 수입 대금을 미국 달러화 대신 위안화로 결제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해왔다. 위안화가 국제통화로 통용되고 있어 사우디는 곧 중국의 요청을 수용할 전망이다. 아직 초기 단계지만 사우디와 중국의 접근은 앞으로 몇 년간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사우디의 국영 석유회사인 아람코는 내년에 국제자본시장에서 기업공개(IPO)를 통해 막대한 자본을 조달할 예정이다.

공모 금액은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인 알리바바가 지난 2014년 기록한 250억달러의 2배나 4배 정도에 달할 전망이다.

그럴 경우 자금을 동원할 수 있는 유력한 투자자는 중국 국부펀드인 중국투자공사(CIC)와 중국 국유기업인 페트로차이나 정도다.

만약 중국이 아람코 지분을 대거 확보한다면 앞으로 석유 수입의 상당량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또 석유 수입 결제 대금의 위안화 교체도 힘을 얻게 된다. 자연스럽게 석유 수입대금으로 지불한 위안화는 본토 투자용으로 다시 중국으로 되돌아가게 되고 중국 무기 수입대금으로도 사용될 수도 있다.

심지어 사우디는 언젠가 달러화 연동제 대신 위안화 연동제를 채택할 수도 있다. 그리고 중국은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 석유 생산국과 전략적, 경제적 협력 파트너가 될 것으로 보인다.

yskwo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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