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태풍 피해보다 더 두렵다"…美 FTA 관세 개정요구에 농민 한숨

입력 2017-09-05 14:09  

[르포] "태풍 피해보다 더 두렵다"…美 FTA 관세 개정요구에 농민 한숨

FTA 관세철폐는 사실상 과수 농가 '종말 선언' 한탄

(곡성=연합뉴스) 박철홍 정회성 기자 = "한·미 자유무역협정 등이 발효된 이후 종말 앞두고 사과나무 심는 심정으로 살아왔습니다. 그나마 유예한 관세마저 철폐한다면 이제는 과일 농사는 희망이 없어요."

5일 오전 전남 곡성군의 한 사과 과수원에서 농민 여길구(58)씨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전날 미국이 지난달 22일 열린 서울에서 열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공동위원회에서 한국 정부의 가장 민감한 분야 중 하나인 농산물 시장 개방을 요구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진 탓이다.

미국 측은 한국 정부에 한국산 농산물에 부과하는 관세는 철폐 기간을 5~10년 연장해달라 요구했고, 반면 우리나라가 수입하는 미국산 농산물에 대한 관세 즉시 철폐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미 FTA 발효 5년이 지난 지금 사과·배·마늘, 치즈, 버터, 설탕, 닭고기 등 545개 품목이 관세가 남아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고향 곡성에서 20여 년 동안 과수농사를 지어온 여씨의 사과밭은 올해 5월 쏟아진 우박의 직격탄을 맞아 조생종 사과 출하를 못 하는 피해를 당했다.

20여 년 동안 농사를 지으며, 태풍에 나무가 꺾이고 올해처럼 우박에 과실이 상처 입는 피해도 있었지만 제일 좌절했던 건 FTA가 시행된 시절이라고 여씨는 회상했다.

여씨는 여느 해처럼 정성스럽게 사과를 키워 시장에 내놓았지만, FTA의 열린 문을 열고 들어온 수입 과일 탓에 사과값은 하염없이 폭락했다.

여씨는 FTA 이전에는 1상자에 5만원씩은 받았던 사과가 이제 3만원 받기도 힘들게 됐다고 한숨 쉬었다.

'FTA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니 농가도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는 말에 여씨도 수긍하고 노력했다.

정부와 지자체의 50% 단가 지원을 받고, 빚을 내 나머지 돈을 채워 과수원 시설도 구축하고, 품종갱신을 위해 신품종 묘목도 들여와 심어보고, 대체작물도 키워봤다.

그러나 노력한 만큼 돌아오는 것은 고생이었을 뿐 손에 남는 것은 푸석푸석한 과수원의 흙뿐이었다.

자연재해 피해는 1∼2년만 견디면 극복할 수 있지만, FTA 관세철폐는 사실상 과수 농가에는 '종말 선언'이라고 여씨는 한탄했다.

여씨는 "FTA 관세가 당장 없어지면, 이제는 과일 농사는 포기해야 한다"며 "곡성 사과는 일교차가 큰 지역 특성 탓에 맛이 좋기로 유명한데 맛 좋은 사과를 기를 수 없게 되는 것은 생각하기도 싫다"고 말했다.




미국 측의 요구대로라면 전남도의 농수산물 수출량도 감소할 위기에 처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남도는 2015년 4천150만 달러, 2016년 4천172만2천 달러의 농수산물 수출실적을 기록하고 올해는 7월 기준 전년 대비 26.1%나 수출이 급증하던 추세였으나, 미국 측의 요구대로 관세가 철폐된다면 전망일 밝지 않다.

이석하 전국농민회 광주전남연맹 사무처장은 "참담하다. 미국의 요구는 겉옷까지 벗어준 우리 농민에게 속옷까지 다 벗어달라고 하는 말로 들린다"며 "한미 FTA 발효 5년이 지나 체리, 오렌지 등 저렴한 미국산 과일이 마트 진열대를 차지하고 우리 소비자 입맛을 사로잡아 과일 농가는 이미 초토화됐다"고 말했다.

또 "관세 양허 제외 품목인 쌀이나 다른 농산물도 결국 위기를 맞은 건 마찬가지다"며 "정부가 미국산 농산물 관세철폐 요구를 수용한다면 국내 농업의 종식을 선언하는 것이다"고 우려했다.

pch80@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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