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13만건 빗발…전문가들도 "제도 손질해야"
최근 5년간 4대범죄 10대 피의자 1만5천명 넘어
(서울=연합뉴스) 임기창 이지헌 최평천 기자 = "미성년자들이 성인 못지않게 잔인하고 악랄한 행동을 일삼는 행태를 바로잡아야 합니다. 소년법을 폐지해야 이들이 가벼운 형을 살고 나와 또 다른 희생자를 만드는 일을 막을 수 있습니다."
부산에서 여중생들이 또래 여중생을 폭행해 피투성이로 만들고, 무릎을 꿇려 사진까지 찍은 사건이 큰 공분을 사고 있다. 강원도 강릉에서도 10대 6명이 또래를 무차별 폭행한 사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급속히 전파되고 있다.
10대들의 이같은 범죄가 연이어 알려지자 과거에도 몇 차례 화두에 오른 '소년법 폐지' 여론이 다시 확산하는 분위기다. 질 나쁜 범죄를 저질렀다면 아동·청소년이라고 관용을 베풀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다.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지난 3일 한 시민이 "청소년보호법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올린 청원에 5일 오후 3시까지 13만명 이상이 참여했다.
청소년을 유해환경에서 보호하는 '청소년보호법'과 미성년자에 대한 형사처벌 특례를 규정한 '소년법'을 혼동한 듯하지만, "어리다는 이유로 청소년을 보호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를 보면 소년법 폐지를 요구하는 청원으로 보인다.
같은 취지로 '청소년법 폐지', '소년법 폐지' 등 제목을 단 청원은 5일 하루에만 오후 3시까지 4천건에 육박했다.
현행 소년법은 만 18세 미만으로 사형이나 무기징역형에 해당하는 범죄를 저지른 경우 형량을 완화해 징역 15년을 선고하도록 하는 등 미성년자 범죄를 예외로 취급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특정강력범죄 처벌에 관한 특례법에도 미성년자가 살인 등 특정강력범죄를 저지른 경우 최장 20년으로 형량을 제한하는 특례조항이 있다.
소년법상 만 10세 이상 14세 미만인 형사미성년자(촉법소년)는 형사처벌하지 않고 보호관찰, 사회봉사 명령 등 보호처분으로 대신한다. 만 10세 미만은 보호처분 대상에서도 제외돼 어떤 형사적 책임도 지지 않는다.
이는 아직 성장하는 단계인 아동이나 청소년이 합리적 판단을 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에 근거한다. 교화를 거쳐 품행이 바뀔 여지가 있는 만큼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의 처벌이나 보호처분으로 건전한 성장을 돕는다는 취지다.
그러나 '성인 뺨친다'는 말이 나올 만큼 죄질이 나쁜 청소년 범죄가 잇따르면서 소년법의 이같은 전제가 유명무실하다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2010년 서울에서는 험담한다는 이유로 친구를 마구 때려 숨지게 하고 시신을 훼손해 한강에 버린 10대 청소년들이 경찰에 검거됐으나 청소년인 점을 고려해 최장 10년의 징역형까지만 선고됐다.
2011년에는 대전에서 지적장애 여중생을 성폭행한 고등학생 16명이 모두 소년보호처분을 받자 소년법을 폐지하거나 손질해야 한다는 여론이 나오기도 했다.
2015년 경기도 용인의 한 아파트 단지 옥상에서 9세 소년이 벽돌을 던져 지상에 있던 50대 여성을 숨지게 한 '캣맘' 사건에서도 가해자에게 아무런 형사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데 분개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박남춘 의원이 경찰청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2∼2016년 이른바 '4대 범죄'(살인·강도·성범죄·방화)로 검거된 10대 피의자가 1만5천849명일 만큼 미성년자 범죄의 심각성은 크다.
같은 기간 4대 범죄를 저지른 촉법소년도 살인 12명, 성범죄 1천703명 등 2천95명에 달해 처벌보다 계도와 보호를 목적으로 한 현행 법제도가 범죄 방지에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치권도 심각성을 공유하고 있다. 민주당 표창원 의원 등 29명은 처벌 필요성이 큰 특정강력범죄에까지 미성년자 형량 완화를 적용하는 것은 지나치다며 해당 내용을 손질한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전문가들은 소년법 등 관련법 폐지 요구는 다소 극단적이라면서도, 미성년자 범죄에 대한 특례를 줄이는 쪽으로 제도를 개선할 필요는 있다고 지적한다.
박옥식 한국청소년폭력연구소 소장은 "외국에는 청소년들에 대한 강한 처벌조항이 있고, 촉법소년 연령대도 낮추는 추세로 가는 국가가 많다"며 "소년법 폐지까지는 아니더라도 연구와 검토를 통해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형사처벌 가능 연령대를 낮추거나, 최대 형량에 대해 재량 범위를 넓히는 방향이 효율적일 것"이라며 "청소년들이 과거보다 조숙한 점을 고려해야 하고 국민 법 감정도 반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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