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장착용 수소탄 시험'이라고 주장한 6차 핵실험의 충격파가 심상치 않다.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문재인 대통령이 '레드라인'으로 설정한 '핵탄두를 장착한 ICBM 완성'도 멀지 않았다고 봐야 한다. 북한의 핵 포기, 즉 비핵화를 전제로 했던 지난 20여 년간의 대북 정책이 한계점에 다가서고 있는 셈이다. 한·미·일 3국은 북한의 숨통을 죄는 원유공급 차단 등을 새로운 유엔 안보리 제재에 담기 위해 중국·러시아 설득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미국은 중·러의 태도 변화를 압박하고자 세컨더리 보이콧(북한과 거래한 제3국 기업 전면 제재)도 불사할 태세다. 한미 양국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미국의 전략자산 배치와 한미 군사훈련 강화,유사시 공세 전환 등을 적극 검토 중이다.
역대 최대의 도발에 맞서 역대 최대의 압박을 가함으로써, 북한이 추가 도발을 멈추고 비핵화 협상 테이블에 나오게 하는 게 우리한테는 최선일 것이다. 문제는 북한의 변화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이번 6차 핵실험은 북한이 '핵보유국 지위 확보'를 최종 목표로 자체 일정표에 따라 행동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미국 본토 타격이 가능한, 핵탄두 장착 ICBM을 완성할 때까지 협상에 나서지 않을 공산이 크다. 원래 미국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핵 폐기"(CVID)를 대북 협상의 전제 조건으로 설정했지만 그런 전제는 이미 무의미해졌다. 북한이 추가로 핵·미사일 도발을 하겠다고 위협하는 터라 아무리 양보를 거듭해도 레드라인을 넘는 것은 시간문제다.
당장은 국제사회와의 공조로 최대의 제재와 압박을 가해 북한의 태도 변화를 끌어내는 데 전력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실제로 레드라인을 넘어섰을 때를 상정한 대책도 생각해야 할 때다. 상황이 그 정도로 나빠진다면 대북 정책의 근본적 재검토가 불가피할 것이다. 북한이 2006년 10월 1차 핵실험을 감행한 이후 10여 년간 반복됐던 도발과 제재, 군사적 긴장 고조, 대화 모색 등의 악순환을 되풀이할 수는 없다. 문 대통령은 5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여기서 북한의 도발이 멈추지 않으면 통제할 수 없는 국면으로 빠져들 수 있다. 북한의 도발을 멈추게 하고 북핵 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방안도 함께 모색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북한의 6차 핵실험 도발을 매우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북한의 핵 보유가 기정사실로 됐을 때를 가정해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구상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미국의 예방타격이나 선제타격으로 북한의 핵·미사일을 해체하는 방안, 둘째 한국의 전술핵 재도입이나 자체 핵무장을 통해 '공포의 핵 균형'을 이루는 방안, 끝으로 북핵을 '묵인'하면서 협상을 통해 관리·통제하는 방안이다. 군사력을 동원한 북한의 핵·미사일 해체는 대규모 군사충돌이나 한반도 전쟁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우리의 자체 핵무장은 미국 주도의 비확산체제에서 이탈하는 것이고 핵 도미노를 불러올 우려도 있어 미국의 동의를 받기 어렵다. 최근 송영무 국방부 장관과 자유한국당에서 제기한 전술핵 재도입은 북한의 핵 보유를 정당화한다는 난점이 있어 미국도 지금은 부정적이다. 그러나 자체 핵무장보다는 걸림돌이 적어 검토할 만하다. 세 번째 방안은 윌리엄 페리 전 미 국방장관이나 제임스 클래퍼 전 미 CIA국장 등이 거론한 바 있다. 북한의 핵 보유를 묵인하면서 북미 간 협상을 통해 북한의 핵·미사일을 일정 한도에서 관리·통제하는 것이다. 이 트랙에서 논의가 진전되면 북한의 체제보장이나 휴전협정의 평화협정 대체도 거론될 수 있다. 미국은 핵 확장 억제 강화나 전술핵 재배치를 통해 남한의 핵전력 열세를 보완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우리 입장에서는 세 가지 모두 바라지 않는 시나리오다. 하지만 북한이 우리 희망대로 움직이리라고 기대하고만 있을 수는 없다. 안보는 국가와 국민의 운명이 걸린 문제다. 희망적 예측에 안보를 걸 수는 없다. 과거의 금기를 깨고 실낱같은 가능성도 철저히 대비하는 것이 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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