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리 프로세스 주역, 中매체에 "1999년 북핵해결 놓쳐 아쉽다"

입력 2017-09-06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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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리 프로세스 주역, 中매체에 "1999년 북핵해결 놓쳐 아쉽다"

"그때로 돌아갈수 있다면 클린턴 행정부 종료전 협의 마칠 것"





(베이징=연합뉴스) 심재훈 특파원 = 윌리엄 페리 전 미국 국방장관이 1999년 간발의 차로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기회를 놓쳤다고 회고했다.

관영 신화통신 자매지인 참고소식망(參考消息網)은 빌 클린턴 미 행정부 시절 국방장관과 대북 특사를 지낸 페리 전 장관이 자사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내용의 아쉬움을 표시했다고 6일 보도했다.

그는 "그 해(1999년)로 돌아갈 수 있다면 반드시 클린턴 행정부가 끝나기 전에 북미관계 정상화 협의를 맺을 수 있도록 노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1994∼1997년 국방장관을 거쳐 1999년 대북정책 조정관으로서 미국 의회의 위임을 받아 대북정책의 로드맵이 담긴 '페리 프로세스'를 제시했다.1999년 10월 나온 페리 프로세스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 중지와 미국의 대북 경제제재 해제,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중단, 북미·북일 관계 정상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등 3단계 접근 방안을 담은 포괄적인 대북 관여정책으로 평가받아왔다.

이 방안은 당시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과 맞물려 주목받았지만, 2001년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한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사실상 폐기됐다.

페리 전 장관은 "나는 외교적 수단을 통해 북핵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우리는 당시 북한을 정상적인 국가로 변하도록 하려 했으며 회담 계획에 따르면 미국은 경제, 농업 분야에서 지원하고 평양에 대사관을 설립해 양국 간 민간 왕래를 회복하려고 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이어 "2000년에 북미 관계 정상화의 대문이 점점 열어지고 있었다"면서 "그 때는 미국의 정권 교체가 문제가 될지 몰랐고 대화와 협상이 긴급한 일인 줄 몰랐다"고 언급했다.

그는 그러면서 "나와 올브라이트 국무장관, 클린턴 대통령이 대화와 협상을 촉구했다면 양측은 미국 정권 교체 전에 합의했을 것"이라면서 "그 때는 우리의 황금기였고 유감스럽게 놓쳤다"고 아쉬워했다.

페리 전 장관은 "우리는 당시 합의에 매우 가까이 갔었고 몇 개월만 지나면 합의에 도달했을 것"이라면서, 부시 행정부와 버락 오바마 전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 정책에 대해선 "그냥 앉아서 결과를 기다리는 것은 전략이 아니다"고 비판했다.

그는 북한의 핵 및 미사일 실험을 강력히 비난하고 가능한 빨리 북미 간 고위급 대화를 진행해야 한다면서 기자가 "기회가 있다면 트럼프의 대북 특사로 다시 방문하길 원하느냐"는 질문에는 "당연히 원한다"고 답했다.

president21@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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