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행 신고자 보호 체제 마련 시급…가해자 초동 조치 필수
전문가 "학교·지역사회 관심 속 입체적 예방 활동 나서야"
(부산=연합뉴스) 이종민 기자 = 부산 '피투성이 여중생' 사건은 교육 당국에서 그동안 마련한 갖가지 예방 대책이 무용지물임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부산교육청의 학교폭력 예방 대책을 보면 표면적으로는 그럴듯해 보인다.
부산교육청의 학교폭력 관련 대책은 이른바 '자갈치 프로그램'으로 불린다.
자갈치는 자율적인 예방활동 강화, 갈등 해결을 위한 합리적인 사안 대응, 치유중심의 관계회복 노력 등 3개 주요 내용의 첫 글자를 딴 것이다.
월별로 학교폭력 예방 대책을 마련해 시행하고 신고함, 신고전화, 자체설문조사, 홈페이지 등을 활용한 신고체제를 상시 운용하도록 했다.
경찰서, 학부모, 자치위원 등 유관기관 간 연계 체제를 유지, 입체적인 예방활동을 벌이도록 했다.
그러나 이같은 대책이 이번 여중생 사건에서 보듯 '속빈 강정'으로 드러났다. 실제 학교 폭력에는 아무런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부산의 한 대안학교에 다녔던 가해 학생 2명은 학교에 출석체크만 해놓고 학교를 나와 폭행과 절도를 일삼았고 피해 학생은 53일 동안 장기 결석을 했지만 이들을 보호 관리해야 하는 교육 당국은 손을 놓고 있었다.
특히 피해 학생이 지난 6월 1차 폭행후 교육청 위(Wee·학생 상담기관) 센터에서 상담을 받았지만 가해 학생에 대한 조처를 하지 않아 결국 지난 9월 1일 끔찍한 보복폭행이 이뤄지면서 세간에 충격을 던졌다.
부산에서는 한해 1천여 건이 훨씬 넘는 학교폭력이 발생한다.
2015년에는 1천200건, 2016년에는 1천589건이 발생했다.
2015년의 경우 학교폭력에 시달린 피해 학생 수가 1천521명에 달했다. 2016년에는 1천998명으로 많이 늘어났다. 한 해 평균 1천500명에서 2천여 명에 달하는 학생들이 학교폭력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교육 당국은 그동안 학교폭력 예방을 위해 많은 정책을 쏟아냈지만 발생 건수와 피해 학생수는 즐어들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대책이 책상머리에서 이뤄지기 때문으로 본다. 은밀하게 이뤄지는 폭력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신고자의 신변이 드러나지 않는 입체적인 신고체제가 필요하지만 부산 교육청의 대책을 보면 이런 것은 잘 보이지 않는다.
부산교육청의 '자갈치 프로그램'에는 사회관계망 서비스(SNS)를 통한 신고시스템도 안내하지 않고 있다. 막연히 학교별로 신고함 설치, 자체설문조사, 홈페이지 활용 등 시대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는 대책만 보인다.
서유미 부산시 부교육감은 지난 6일 시의회에 출석해 "이번 사태가 발생한 데는 학교폭력 예방 시스템에 약한 고리(취약점)가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며 "TF를 구성해 약한 고리를 보강하고 더욱 촘촘한 예방체계를 구축하겠다"고 말해 예방체계에 문제점이 있음을 시인했다.
학생상담 활동이 단순 상담에 그치고 있다.
상담에서 얻은 정보를 활용해 또래 학생, 가해학생의 최근 동향을 분석하고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입체 상담 등으로 이뤄져야 하지만 단순한 생활지도 상담, 고민 상담에 그치는 측면이 많다.
이번 '피투성이 여중생' 사건도 1차 상담 때 얻은 정보로 가해학생을 찾아내 상담을 하는 등의 조치를 했다면 2차 폭력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란 아쉬움이 남는다.
이상철 부산시교육정책연구원 선임연구원은 "학교에 전문상담 교사가 부족하고 담임 선생님들도 학생들과 스킨십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많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 선임연구원은 "성적 중심의 경쟁 교육 때문에 아이들이 학교 밖에 방치되고 있다"며 "마을 교육공동체를 구성하는 등 지역 사회가 학교폭력 예방에 함께 나서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이동형 부산대 교육학과 교수는 "이번 사태처럼 극단적인 폭력성을 띠는 학생들은 어린 시절부터 매우 폭력적인 징후를 보인다"며 "현 학교폭력 예방책은 일회성이거나 단편적인 부분이 많아 효과를 내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폭력성을 띠는 학생들을 조기에 발견해 공감 훈련을 한다든지 체계적인 행동지원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입체적인 예방활동과 상담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ljm703@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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