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라다 마하 장편소설 '암막의 게르니카'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 이리저리 도망치는 사람들, 소리 높여 우는 말, 경악하며 돌아보는 황소, 힘이 다해 쓰러진 병사. 파블로 피카소(1881∼1973)의 1937년작 '게르니카'는 전투도, 살육 장면도 아니지만 20세기 어느 예술작품보다 반전의 메시지를 강렬하게 전한다.
일본 작가 하라다 마하(原田マハ·55)의 '암막의 게르니카'(인디페이퍼)는 게르니카의 탄생과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작품의 역사·사회적 의미를 소재로 삼은 장편소설이다.
이야기는 뉴욕현대미술관(MoMA)에 전시된 게르니카를 관람한 열 살 소녀 요코가 전율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어른이 된 요코는 피카소를 전공하고 MoMA의 회화·조각 부문 큐레이터로 일한다.
2001년 9·11테러로 남편을 잃은 요코는 2년 뒤 피카소전에 게르니카를 전시할 계획을 세운다. 게르니카는 1981년 스페인에 반환된 상태였다. 오랜 '망명' 끝에 피카소의 고국으로 돌아간 게르니카를 다시 빌려오기는 어려웠다. 차선책으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장 로비에 전시된 게르니카 태피스트리를 전시할 계획을 세운다. 1955년 제작된 정밀한 복제화였다.
그러나 요코는 TV뉴스에 비친 안보리 회의장 로비를 보고 경악한다. 게르니카에 암막이 씌워져 있었다. 뉴스에선 미국 국무장관이 9·11테러의 앙갚음으로 이라크에 무력을 행사하겠다는 계획을 밝히는 중이었다.
누가 게르니카를 감췄을까. 작가는 2003년의 뉴욕과 마드리드·빌바오를 오가며 비밀을 추적한다. 그러면서 피카소가 게르니카를 작업하던 1937년의 파리를 그의 연인 도라의 시선으로 보여준다.
게르니카는 1937년 5월 열린 파리 만국박람회 스페인관에 전시할 목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피카소는 당초 가로 780㎝, 세로 350㎝의 거대한 캔버스를 '화가의 아틀리에'로 채우려 했다. 그러나 나치 독일의 게르니카 공습 소식을 듣고 마음을 바꿨다.
소설은 게르니카의 역사적 사실과 요코의 전시를 둘러싼 허구를 뒤섞는다. 1930년대를 서술하는 부분에선 루이 아라공, 폴 엘뤼아르 등 당대 유럽의 문화예술계를 주름잡은 실존 인물들을 발견하는 재미도 있다.
"우리는 단연코 싸울 것이다. 전쟁과. 테러리즘과. 어둠의 연쇄와. 우리는 피카소의 의지를 계승해, 미술을 통해 싸우는 것이다."(274쪽) 작가의 메시지는 "예술은 장식이 아니다. 적에게 맞서 싸우기 위한 무기"라는 피카소의 예술관과 일치한다.
와세다(早?田)대학에서 미술사를 전공한 작가는 작중 요코처럼 MoMA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큐레이터 출신이다. 앙리 루소의 미공개 작품을 두고 벌어지는 두뇌싸움을 그린 전작 '낙원의 캔버스'를 비롯해 '아트 서스펜스'로 불리는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김완 옮김. 444쪽. 1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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