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귀향, 끝나지 않은 이야기'서 위안부 소녀 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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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김희선 기자 = "우리가 아픈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갖고 깊이 생각하고 기억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위안부 문제가 해결될 수 있으니까요. 영화를 보고 슬프고 화가 나면 실컷 울어주세요. 그게 할머니들의 한을 푸는 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위안부의 아픔을 담은 영화 '귀향'과 '귀향, 끝나지 않은 이야기'에서 주인공 정민 역을 연기한 배우 강하나(17)는 오사카에 사는 재일교포 4세다.
극단을 운영하는 어머니의 영향으로 4살 무렵 자연스럽게 무대에서 연기를 시작해 작년 '귀향'을 통해 스크린에 데뷔했다. 강하나의 어머니인 김민수 씨 역시 이 영화에 일본군 위안소 관리인 역으로 출연한다.
최근 마포구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강하나는 "'귀향'의 시나리오를 읽고 충격을 받았다"며 "영화는 처음인데다 쉬운 역할이 아니어서 망설이기도 했지만, 위안부 문제 해결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다는 생각에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학교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해 배우기는 했지만 깊이 알지는 못했어요. 시나리오를 읽은 뒤에야 이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됐죠. 촬영에 들어가기 전 할머니들의 증언집을 읽고 '나눔의 집'을 방문하고 박물관 돌아보면서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영화에서 경남 거창의 한 평범한 가정집에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중국 위안소로 끌려간 열네 살 소녀 정민을 연기한다.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란 그에게 가장 힘들었던 것은 언어였다고. 일본어 대사는 능숙하게 할 수 있었지만, 한국어 발음이 서툴렀던 그가 경상도 사투리를 소화하기란 여간 쉽지 않았다. 하지만 피나는 연습과 노력 덕분에 영화 속에서 그는 재일교포 4세라는 것을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로 경상도 사투리를 맛깔나게 구사한다.
그는 "경상도 출신 배우들과 스태프들로부터 지도를 받고 녹음한 것을 수없이 들으면서 연습했다"고 말했다.
정민이 위안소에서 겪게 되는 여러 감정을 복합적으로 표현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같이 위안소를 탈출하다 감옥에 갇힌 친구 옥분이를 찾아가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어요. 슬픔과 미안함, 원망 등 여러 가지 감정이 복잡하게 교차하는 걸 표현하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어머니로부터 연기 지도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는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 죽은 정민이가 영혼으로 되살아나 집으로 돌아오는 마지막 장면을 꼽으면서 "이 장면을 보면서 부디 타향에서 돌아가신 할머니들의 영혼이 모두 고향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귀향' 촬영을 마치고 작년 2월 작품이 개봉한 뒤에도 마음고생이 이어졌다고 한다. 일본 현지 상영회를 통해 영화가 일본인들에게도 알려지자 인터넷에 극우 세력의 비판이 잇따랐기 때문이다.
"인터넷상에 저의 이름, 학교, 주소까지 공개됐고, 비난하는 글들도 많이 올라왔어요. 신변에 위협을 느껴서 경찰에 보호를 문의하고 변호사를 찾기도 했죠. 작년 작품 개봉 당시 무대 인사나 인터뷰에 나서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에요."
작년 공식 행사에 나서지 않았던 그는 후속작인 '귀향, 끝나지 않은 이야기' 개봉을 앞두고 조정래 감독과 함께 무대 인사에 나서면서 관객과 만나고 있다.
그는 "무대에서 객석을 채워주신 관객들을 볼 때 가장 뿌듯하다"며 "제가 '귀향'과 함께 지금까지 해온 게 옳은 선택이었고, 앞으로도 계속 '귀향'과 함께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귀향, 끝나지 않은 이야기'의 홍보 일정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강하나는 다음 달 14일에는 부산에서 연극무대에 오른다.
어머니 김민수 씨의 극단 달오름이 선보이는 작품 '4·24의 바람'을 통해서다. 1948년 조선인학교 폐쇄령에 맞서 일본 조선인학교를 지켜낸 재일 조선인들의 이야기를 다룬 연극이다.
그는 "앞으로도 한국에서 계속 활동을 이어갈 것"이라며 "연극 무대뿐 아니라 다양한 영화를 통해서 관객과 만나고 싶다"고 덧붙였다.
hisunn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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