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메시지 내기로 결심…"손수 집필…대변인 아닌 대통령 명의로"
(서울=연합뉴스) 김승욱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8일 밤 사전 예고없이 사드 임시배치와 관련한 대국민 메시지를 내놨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당초 이날 오후 "매우 복합적인 사안이어서 대통령의 메시지가 언제 나올지 불확실하다"고 밝혀 주말쯤 메시지가 나올 것이라는 예상을 낳았으나, 반나절도 안돼 '사드배치 관련 대통령 입장'이 서면 메시지 형태로 나왔다.
일단 문 대통령이 미리 예고하지 않고 '전격적으로' 메시지를 내놓은 모양새이지만, 사실 어젯밤 러시아 방문을 마치고 귀국한 문 대통령은 이른 아침부터 메시지를 내기로 결심하고 하루 종일 고심을 거듭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사안이 워낙 중대하고 민감한 탓에 동일한 메시지를 두고도 수신자들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로 읽힐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문 대통령은 메시지에 담길 내용과 표현의 수위를 놓고 깊은 고민을 했으며, 손수 글을 쓰고 수정하는 작업을 거쳐 오후 8시40분께 입장문 발표를 '결심'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핵심참모들 조차 미처 예상을 못하고 있다가 대통령의 발표 결정을 접하고 당황스런 기색을 보이기도 했다.
주목할 점은 대통령이 자신 명의의 서면 메시지를 내놓은 것이 처음이라는 점이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다 대통령께서 고민했다"며 "대변인 명의로 내자는 의견도 냈지만, 대통령께서 기다린 국민들을 위해 미룰 수 없다면서 대통령 명의로 내자고 낸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대통령이 이번 사안을 얼마나 진정성있게 접하고 있는 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여기에는 사드 배치를 두고 물리적 충돌이 빚어지고 부상자가 속출하는 상황 속에서 대통령이 침묵을 지키는 것은 책임있는 모습이 아니라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문 대통령이 내놓은 입장문은 크게 볼 때 최근 북한의 도발에 따른 사드 배치의 불가피성을 국민들께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는 대목과 시민과 경찰의 충돌로 피해와 상처를 입은 사람들을 '위로'하는 대목이 핵심을 이룬다.
이는 국민 일반을 겨냥한 메시지이기는 하지만 사드 임시배치에 반발하고 있는 진보진영을 달래려는 의도가 가장 커 보인다. 문 대통령을 지지해온 진보진영은 정부가 사드 배치를 위해 공권력을 동원한 데 대해 '촛불 배신'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의당 이정미 대표는 전날 제주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사드 발사대 배치에 대해 "강정마을의 아픔이 소성리에서 재연됐다"며 "사드 배치와 같은 공약 뒤집기는 시민들의 지지를 배신하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노동당도 "소통·대화를 통한 합리적 국정운영을 바란 촛불 정신을 배신했다"고 주장했고, 참여연대는 "정부는 사드 배치 합의 과정을 진상조사하고 국회 동의를 받겠다는 약속을 저버렸다"며 "이제 중국의 반발은 정치·경제는 물론 군사 분야까지 확대될 것이고, 미국의 더 많은 무기구매 요구에 직면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진보세력의 비판이 문 대통령에게 뼈아픈 것은 이들이 문 대통령의 주요 지지기반이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탄핵 국면에서 이들이 한 축을 담당한 '촛불 세력'의 전폭적인 지지로 대통령에 당선됐다는 점에서 진보진영의 '이탈'은 정치적으로 큰 부담이 될 수 밖에 없다.
이날 입장문은 대내적 메시지에 국한된 성격이지만 사드 임시배치에 극력 반대하고 있는 중국을 향해 우회적으로 사드 임시배치의 불가피성을 강조한 측면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문 대통령은 "(사드 임시배치는) 미리 예고했던 바이기도 하다"며 "북한이 핵과 미사일을 갈수록 고도화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이에 대한 방어능력을 최대한 높여나가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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