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 총리, 트럼프에 무역적자 축소, 대북제재 협조 등 약속할 듯
(자카르타=연합뉴스) 황철환 특파원 = 말레이시아의 나집 라작 총리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초청을 받아 11일 2박3일간의 방미 일정에 올랐다.
이번 방문은 미국 법무부가 나집 총리의 대규모 비자금 스캔들과 관련한 수사에 착수한 직후 성사돼 말레이시아와 미국 양국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나집 총리와 측근들은 국영투자기업 1MDB를 통해 수십억 달러 규모의 나랏돈을 미국과 스위스 등지로 빼돌려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이와 관련해 미국 법무부는 작년부터 17억 달러(약 1조9천억원) 규모의 미국내 자산에 대한 압류절차를 밟아왔으며, 지난달에는 관련자들에 대한 형사수사를 개시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사건 핵심 인물인 나집 총리를 백악관에 초청하면서 미국 수사당국은 난감한 입장에 처하게 됐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6일자 사설을 통해 "스캔들로 물든 지도자에게 백악관에서 사진을 찍을 기회를 주는 것 이상으로 부끄러운 일은 없다"면서 트럼프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했다.
워싱턴포스트(WP) 칼럼니스트인 조시 로긴은 트럼프 대통령이 나집 총리를 백악관에 초청한 것은 "법치의 후퇴"라고 말했다.
하지만 동남아 전문가들은 이번 방문이 나집 총리는 물론 미국에도 상당한 실익을 가져다 줄 것으로 분석했다.
양국 정상은 오는 12일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미국과 말레이시아의 무역수지 불균형 문제가 중점적으로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말레이시아와의 무역에서 연간 250억 달러 상당의 적자를 기록해 왔다.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아시아 전문가 머리 히버트 부소장은 나집 총리가 미국의 적자폭을 줄이는 방안을 제안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실제 나집 총리는 지난 8일 기자들을 만나 "미국과의 파트너십은 상호간에 이득이 되는 쌍방향적인 것으로 보고 싶다. 이는 일방적인 관계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력한 방안 중 하나로는 미국산 무기류 수입이 거론된다.
말레이시아는 작년 말 중국으로부터 연안임무함(LMS) 네 척을 구매했고, 이는 말레이시아가 중국제 무기를 대규모로 구매한 첫 사례여서 남중국해 주도권을 두고 중국과 대립해 온 미국에 상당한 타격으로 여겨졌다.
전문가들은 나집 총리가 북한 핵실험과 관련한 대북제재 협력과 관련해서도 적극적인 태도를 보일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싱가포르 라자나트남 국제연구원(RSIS)의 요한 사라바누무투 수석 연구원은 최근 현지 일간 스트레이츠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대외정책 측면에서 트럼프는 '이슬람국가'(IS)와 북한, 중국을 명백히 염두에 두고 있다"면서 "말레이시아는 이와 관련해 비록 결정적이진 않아도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앞서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부 장관은 지난달 초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참석 직후 말레이시아를 방문해 대북제재의 철저한 이행과 북한 관련 정보 공유, 말레이시아 내 북한 기업 폐쇄 등을 요구한 바 있다.
대신 나집 총리는 미국 방문을 통해 부패 스캔들로 흔들린 국내 정치 기반을 다잡은 뒤 이르면 올해 치러질 차기 총선 준비에 전념할 수 있게 될 전망이다.
hwangc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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