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장의 그림·끈질긴 설득으로 고국 돌아온 '이선제 묘지'

입력 2017-09-12 10:38   수정 2017-09-12 14:50

두 장의 그림·끈질긴 설득으로 고국 돌아온 '이선제 묘지'

강임산 국외소재문화재재단 팀장이 전하는 유물 환수 과정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정해진 면담 시간이 10분이었는데, 한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눴던 것 같아요. 마지막에 다시는 안 만나주면 어쩌나 하는 마음이 들었어요. 병실을 나오기 직전에 큰절하고 또 뵙고 싶다고 말했죠. 소장자가 허허 웃으면서 부인에게 음식 대접하라고 하더군요."

강임산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하 국외재단) 팀장은 12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2015년 12월 일본 후쿠오카에서 '이선제 묘지' 소장자를 처음 만났을 때를 회고하면서 "순간적으로 감사의 인사를 표하고 싶었다"며 이같이 털어놨다.

조선 전기 호남을 대표하는 인물인 이선제(李先齊, 1390∼1453)의 무덤에서 도굴됐던 묘지(墓誌·망자의 행적을 적어 무덤에 묻은 돌이나 도판)는 1998년 6월 김포공항을 통해 일본으로 밀반출됐다가 지난달 24일 19년 만에 고국의 품에 안겼다.

국외재단 일본사무소가 2014년 10월 일본에서 이선제 묘지의 존재를 파악했을 때부터 환수 과정에 참여한 강 팀장은 "의미 있는 문화재가 돌아온 것만으로도 기쁘다"면서 묘지 그림을 남긴 김해공항 문화재감정관실과 소장자 도도로키(等等力) 부부에게 공을 돌렸다.

이선제 묘지는 일본으로 빠져나가기 약 한 달 전인 1998년 5월에도 밀반출 시도가 있었다. 당시 김해공항 문화재감정관실에서 근무하던 양맹준 전 부산박물관장과 최춘욱 감정위원은 유물의 가치를 알아보고 반출을 불허한 뒤 이선제 묘지를 두 장의 그림으로 남겼다. 이어 이를 바탕으로 문화재관리국(현 문화재청)에 제보 조서를 보냈다.

묘지의 형태는 물론 명문(銘文)까지 자세하게 묘사된 그림은 이 유물이 현대에 불법적으로 매매됐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결정적 자료가 됐다. 강 팀장은 2014년 12월 인터넷에서 우연히 그림을 발견하고 도난 문화재임을 확신했다.

강 팀장은 "19년 전 성실한 공무원이 그린 그림이 없었다면 이선제 묘지가 언제 일본에 넘어갔는지 규명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도도로키 부부를 설득하는 과정에서 첫 번째로 내세운 환수 이유가 불법 도난품이라는 사실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선의취득이 인정돼 묘지의 법적 소유권은 도도로키 부부에게 있지만, 이선제의 후손인 광주이씨 문중이 애타게 찾는 유물이라는 점도 강조했다"면서 "유물의 성격이 알려진 상황에서는 팔기 어려우니 한국에 기증하면 명예로울 것이라고 권했다"고 덧붙였다.






국외재단은 도도로키 다카시(等等力孝志) 씨가 2016년 12월 사망한 뒤 부인인 도도로키 구니에(等等力邦枝) 씨를 올해 2월에 만나 기증의 필요성을 거듭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국외재단은 이선제 묘지에 남아 있는 후손에 대한 기록을 주목했다. 이선제가 낳은 5남 1녀 가운데 막내인 이형원(李亨元)은 문종 즉위년(1450) 생원, 문종 1년(1451) 예문관 검열이 됐다.

이형원은 성종 10년(1479) 조선통신사를 이끄는 책임자인 정사로 일본에 파견됐으나, 쓰시마 섬에서 병에 걸려 규슈(九州)에 닿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연을 들은 도도로키 구니에 씨는 "530여 년 전 임무를 마치지 못한 이형원이 안타깝다"며 기증 의사를 밝힌 뒤 "일본에 왔던 이선제 묘지가 한국으로 돌아가게 됐으니 그의 아들도 못다 한 임무를 마친 것 같다"고 말했다.

강 팀장은 "소장자가 무상 기증이라는 큰 결심을 내렸다"며 "묘지 환수를 계기로 필문 이선제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길 바란다"고 희망했다.

psh59@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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