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 배제한 박근혜 정부 블랙리스트보다 '민간 개입' 직접적
국정원 내부조사로 '대통령 보고' 정황 드러나…檢 수사 주목
(서울=연합뉴스) 고동욱 기자 = 지난해 박영수 특별검사팀의 국정농단 사건 수사를 통해 박근혜 정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의 존재가 알려진 데 이어 이명박 정부에서도 국가정보원 주도로 유사한 일이 이뤄졌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국정원 적폐청산 태스크포스(TF)의 조사에서 확인된 총 82명의 이명박 정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는 정부에 비판적인 문화예술인들에 대해 세무조사, 인사 조처 등을 유도하는 등 박근혜 정부 때보다 더 직접적인 압박을 가하는 행위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12일 적폐청산 TF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2009년 2월 취임한 이후 문화예술계의 특정 인물과 단체에 대해 압박 활동을 하도록 수시로 지시했다.
이에 따라 국정원은 같은 해 7월 김주성 당시 기조실장을 팀장으로 하는 '좌파 연예인 대응 TF'를 구성해 정부를 비판하는 연예인들에 대해 활동 실태를 수시로 점검하고, 전방위적 퇴출 압박에 나섰다.
국정원은 2009년과 2011년 특정 연예인이 소속된 기획사에 대해 세무조사를 유도했고, 2010년에는 특정 연예인이 진행하는 MBC 라디오 프로그램의 진행자 교체를 유도했다고 TF는 밝혔다.
정부를 비판하는 연예인의 방송 출연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해당 연예인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에 대해 폐지를 유도하기도 했다.
프로그램 제작자는 전보 발령토록 하고 각종 시상식에서 탈락시키는 일도 있었다.
2010년 3월 MBC의 새 사장 취임을 계기로 고강도 인적 쇄신, 편파 프로그램 퇴출 등 체질개선 추진 방안을 마련하기도 했다.
아울러 국정원 심리전단에서는 온라인 공간에서 특정 인물의 이미지를 떨어뜨리기 위한 여론전을 벌이고, 광고주에는 항의 이메일 등을 보내 모델을 교체하도록 압력을 넣은 것으로 파악됐다.
이런 행위는 정부와 다른 정치적 성향을 보이는 문화예술계 인사들을 위축시키기 위해 민간 영역으로 정보기관이 곧장 압력을 넣었다는 점에서 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 사건과 차이를 보인다.
박근혜 정부에서 블랙리스트는 문화체육관광부와 문화예술위원회 등 정부 산하기관으로 전달돼 특정 인사에 대한 지원을 배제하는 데 활용됐다.
적폐청산 TF의 발표대로라면 이명박 정부 시절의 블랙리스트는 국정원이 방송사의 프로그램 제작이나 인사 등에 개입하는 행위로까지 이어진 셈이어서 검찰 수사가 필요한 대목이다. 더 구체적인 행위라는 점에서 죄질이 나쁘다는 견해도 나온다.
범죄행위에 적용된 법률을 봐도 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대해서는 특검이 형법상 직권남용 혐의를 적용했지만 이명박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대해서는 적폐청산 TF가 국가정보원법상 직권남용 혐의로 검찰 수사를 의뢰했다.
형법상 직권남용죄의 형량은 5년 이하의 징역이나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이지만, 국정원법상 직권남용죄는 7년 이하의 징역과 7년 이하의 자격정지다.
이명박 정부를 거쳐 박근혜 정부로 넘어가면서 공공 자원의 배분이라는 정부의 공식적 업무에 블랙리스트를 접목함으로써 정치적 성향을 기준으로 문화예술인들을 차별하는 작업이 체계화·지능화됐다고도 의심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 블랙리스트 사건의 경우 조사 과정에서 구체적인 범행 내용이 대통령에게 보고된 의심 정황이 더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점도 향후 검찰 수사와 재판 등에서 박근혜 정부 사건과 차이점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엿보인다.
TF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원세훈 전 원장 시절 국정원은 '좌파 연예인 정부 비판활동 견제 방안', '좌파 문화·예술단체 제어·관리 방안' 등을 청와대 'VIP 일일보고', 'BH 요청자료' 등의 형태로 청와대에 보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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