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유혈소탕전 비판에 '괘씸죄'…두테르테 "인권위가 자초한 일"
(하노이=연합뉴스) 김문성 특파원 = 필리핀 정부와 여당이 예산 지원을 끊는 방식으로 국가 인권기구의 무력화에 나서자 인권 보호 의지가 없다는 비판을 다시 사고 있다.
13일 현지 GMA뉴스 등에 따르면 필리핀 하원은 전날 오후 본회의에서 찬성 119표, 반대 32표의 압도적 표차로 내년도 국가 인권위원회 예산을 1천 페소(2만2천 원)로 삭감하기로 의결했다.
정부가 올해보다 9.5% 깎아 편성한 6억7천800만 페소(150억 원)의 인권위 예산을 사실상 전액 삭감한 것이다.
앞서 판탈레온 알바레스 하원의장은 "인권위원회가 범죄자들만 보호하고 있다"며 "범죄자 권리를 보호하기 원한다면 범죄자로부터 예산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권위가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의 '마약과의 유혈전쟁'과 관련, 인권침해를 비판하며 관련 사건을 조사하는 등 정부 주요 정책에 '반기'를 든 것을 두고 한 말이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이런 하원의 예산 삭감에 대해 "치토 가스콘 인권위원장이 자초한 일"이라고 두둔했다.
인권위가 무장반군 마우테 등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세력의 인권침해 행위를 조사하지 않고 정부의 권한 남용이나 실수 등을 조사하는 데 전념한다는 것이 두테르테 대통령의 지적이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이전에 인권위 폐지를 경고할 정도로 인권위 활동에 강한 불만을 품고 있다.
이에 대해 아그네스 칼라마르드 유엔 즉결처형 특별보고관은 트위터를 통해 "비난받을만한 부당한 조치"라며 필리핀 하원의 인권위 예산 삭감을 비판했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의 펠림 카인 아시아지부 부지부장은 독립적인 국가 인권기구가 어린이들을 포함해 수천 명의 목숨을 앗아간 마약 유혈소탕전에 제동을 거는 것을 막기 위한 두테르테 정부의 시도라고 해석했다.
카인 부지부장은 필리핀 의회가 오히려 인권위 예산을 늘려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해줄 것을 촉구했다.
알바레스 하원의장이 예산 부활 조건으로 가스콘 인권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인권위는 수용 불가 입장을 밝혔다.
가스콘 위원장은 예산 삭감을 인권위에 대한 보복이라고 비판하며 상원 심의 과정에서 필요한 예산을 확보할 수 있게 설득 작업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kms123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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