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 "제가 그 분을 닮고 싶어서 닮았겠습니까. 그 분 닮았다는 이유로 출연 정지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탤런트 고(故) 박용식이 지난 2013년 1월 한 TV 토크쇼에 나와 한 말이다. 그는 전두환 전 대통령을 닮았다는 이유로 5공화국 시절 난데없이 방송 출연이 정지됐다.
박용식은 "연기를 할 수 없으니 자연스럽게 생활고를 겪게 됐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7년 동안 참기름 장사를 하며 생계를 이어갔다"며 "분하고 화도 나고 억울했었다"고 토로했다. 그는 결국 정권이 바뀐 뒤에야 방송에 복귀할 수 있었다.
'방송 블랙리스트'의 희생양인 셈이다. 그가 '블랙리스트'에 오른 이유가 코미디와 다름없지만, 30~40년 전까지만 해도 그런 일이 버젓이 벌어졌다. 저 위에서 누가 한마디 하면 연예인의 활동 정도는 쉽게 막을 수 있었던 '그때 그시절'이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단다. 문화계가 'MB 정부 블랙리스트'로 시끌시끌하다. 정치, 사회적 이슈에 대해 공개적으로 발언하고, 관련 행사에 적극 참여한 인사들이 포함됐다. 하루아침에 출연하던 프로그램에서 하차 통보를 받거나, 수년간 TV 드라마 출연이 성사되지 않았던 게 알고 보니 이 때문이었다는 '피해 사례'가 수집되고 있다.
방송 전파의 주인은 시청자다. 시청자는 시청률로 말을 한다. 라디오도 마찬가지다. 시청자(청취자)는 보기 싫은 사람, 보기 싫은 프로그램이 나오면 채널을 돌린다. 그런데 주인의 의사는 아랑곳없이 블랙리스트가 운용돼왔다니 월권도 이런 월권이 없다.
물론 마약, 음주운전, 도박, 폭행, 언어폭력 등 범죄를 저지르거나 물의를 빚은 경우는 방송사가 알아서 걸러야 한다. 방송사마다 공식적으로 방송 출연 금지 규정과 리스트가 있다. 여기에는 시비가 붙지 않는다.
그런데 방송사들은 정작 관리해야 할 인물에게는 관대하다. 음주운전 정도는 가볍게 잊어주고, 마약과 도박 전과도 그다지 어렵지 않게 용서하며 TV 출연 기회를 준다. 시청률 때문이다. 그래놓고는 '낙하산 블랙리스트'에 보조를 맞춰왔다니 시청자는 불쾌하다.
'대한 늬우스'가 없어진 지도 20여 년이다. 무인 탐사선이 토성을 가는 시대다. 그런데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블랙리스트란다. 낯부끄럽다. '응답하라 1970'을 찍는 것도 아니고 촌스럽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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