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예술단 '굳빠이, 이상' 21~30일 공연…김연수의 동명 소설 각색
(서울=연합뉴스) 임수정 기자 = 김연수의 시인 이상(1910~1937·본명 김해경)에 대한 비상한 관심은 익히 알려진 바다.
그의 이름에서 '연'(衍)은 이상의 유고작품 '단발'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 이름에서 가져온 것이다.
그를 한국문학계 '대스타'로 떠오르게 한 출세작도 이상에 대해 쓴 장편소설 '굳빠이, 이상'(2001)이다. 이상의 유품인 '데드 마스크'(고인의 얼굴에 유토나 점토를 발라 뜬 석고모형)를 중심으로 이상의 삶과 죽음에 얽힌 수수께끼를 화자 세 명의 시선으로 풀어나가는 작품이다.
오는 21~30일 서울 중구 CKL스테이지에서 공연하는 서울예술단의 창작가무극 '굳빠이, 이상'은 이 소설을 무대로 옮긴 작품이다. 김연수의 작품이 공연화되는 것은 소설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을 극단 '슈퍼마켓 가계도'가 동명의 연극(2013) 무대로 옮긴 이후 이번이 두 번째다.
연극과 뮤지컬 무대 등을 오가며 활발히 활동 중인 연출가 겸 극작가 오세혁이 각색과 작사를 맡아 소설을 무대로 옮겼다.
14일 서울 종로구 통인동 '이상의 집'에서 기자들과 만난 김연수와 오세혁은 이상 문학의 매력으로 '모호함'을 꼽았다.
김연수는 초등학생 시절 월간지를 통해 읽은 '오감도 시제1호'로, 그러니까 그 유명한 '13인의아해가도로를질주하오'라고 시작하는 이 시를 통해 난해하지만 매력적인 시인을 처음 접했다.
본격적으로 이상을 좋아한 것은 고등학생 시절부터다.
"이과를 선택했기 때문에 문학은 교과서에 실리는 정도만 접했어요. 그러니까 해석이 되는 문학만을 접했던 거죠. 그런데 이상 작품은 그게 아니잖아요. 이상은 제게 '문학은 이해해야 한다'는 전제를 처음으로 버리게 한 작가입니다. 그리고 그게 또 우리 삶을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하고요. 받아들이기 어려운, 답을 구하려 노력하지만 그 답을 찾기 힘든 게 인생이잖아요. 한국 문학사에서 가장 문제적인 작가라고 생각해요."(김연수)
어린 시절 수필 '권태'로 이상을 처음 접했다는 오세혁도 이 시인에 대해 "어떤 명확한 방향성의 모호함을 지닌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그가 2015년 이상의 기일을 기념하는 행사 '이상과 13인의 밤'을 준비하며 지인 13명에게 전화를 걸어 '이상이 누구냐'라고 물었을 때 지인들은 모두 다른 답변을 내놓기도 했다.
"이상이 신화적인 인물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명확하지 않고 모호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최근 다른 공연의 소재가 됐던 백석, 윤동주 시인의 경우 어떤 명확한 지점들이 있는데, 이상은 정확히 어떠어떠한 사람이라고 규정하려 하면 할수록 점점 공연이 이상해지는 것 같더라고요."(오세혁)
그래서 이번 공연도 이상의 글쓰기 방식만큼이나 파격적이고 실험적 형식을 취하기로 했다.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허물어 관객을 관람자에서 참여자로 끌어들이는 '이머시브 공연'을 표방한다. 특별한 주인공이나 뚜렷한 서사를 내세우지도 않는다.
김연수는 "반드시 원작의 이러이러한 부분을 지켜달라고 부탁한 부분은 없었다"며 "스토리는 많이 해체됐지만, 인상적인 형식과 실험성을 즐길 수 있는 공연이 될 것 같다"고 소개했다.
"(소설 속 등장인물인) 서혁민이 도쿄제국대학 부속병원 응급실에 가서 젊은 이상을 만나는 환상을 꾸는 장면, 군중이 이상의 데드 마스크를 뜨는 장면, 이 두 가지는 공연에서 살아남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는데 그 장면들은 공연 속에 다 담겨 있습니다. 아직 대본밖에 읽지 못했지만 기대가 많이 됩니다.(웃음)"
오세혁은 "한 명이 주인공이 아닌, 작품에 출연하는 16명 전부가 각자의 재능과 특기로 동등하게 참여하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김연수는 가끔 공연 관람을 즐기지만, 직접 공연 대본이나 영화 시나리오를 쓴 적은 없다.
그는 "소설은 생각인데 연극은 대사이다 보니 훨씬 말들이 강렬해지는 느낌을 받는다"며 "영화를 쓰면 행동으로, 연극으로 쓰면 대사로 다 보여줘야 할 테니 소설가로서 선뜻 이런 걸 해보겠다고 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대신 그는 자신의 소설 '밤은 노래한다'는 꼭 한 번 희곡으로 옮기는 도전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1930년대 옛 북간도(연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외부자의 입장으로 썼던 작품인데, 내부자의 시선으로 된 글을 다시 한 번 써보고 싶습니다."
sj9974@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