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자·수상자, 트럼프 풍자발언 잇따라…前백악관 대변인 깜짝등장도
트럼프 시대 권위주의 암시한 '시녀 이야기'가 최고상 받아
(서울=연합뉴스) 강건택 기자 = "도널드 트럼프가 에미상을 받았다면 그는 결코 대통령에 출마하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스티븐 콜베어)
미국 방송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에미상 시상식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향한 풍자와 조롱으로 도배됐다고 AFP 통신과 워싱턴포스트(WP) 등 외신들이 보도했다.
포문을 연 것은 시상식을 진행한 유명 정치풍자 코미디언 스티븐 콜베어였다.
콜베어는 17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마이크로소프트 시어터에서 열린 시상식 오프닝 독백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과거 진행한 TV프로그램 '셀리브리티 어프렌티스'(Celebrity Apprentice)로 수차례 에미상 후보에 노미네이트됐으나 결국 수상하지 못한 사실을 꼬집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에미상을 못받아 대선에 출마한 것처럼 비꼰 뒤 "그래서 이것(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것)은 모두 여러분의 잘못"이라고 말해 박장대소를 자아냈다.
이어 "트럼프는 에미상을 받지 못했다. 왜냐면 대통령직과 달리 에미상은 인기투표의 승자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라고 조롱했다. 지난해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후보보다 훨씬 적은 표를 받고도 선거인단을 더 많이 확보해 논란이 된 것을 가리킨 언급이다.
시상식에는 트럼프 대통령과 갈등을 겪다가 지난 7월 경질된 숀 스파이서 전 백악관 대변인이 깜짝 출연해 '자학 개그'를 선보여 풍자 분위기를 더욱 뜨겁게 했다.
콜베어의 소개로 등장한 스파이서 전 대변인은 백악관 스타일의 연단에 서서 "이번이 에미상을 지켜보는 청중이 가장 많은 시상식"이라고 말했다. 이는 그가 첫 백악관 브리핑에서 "이번이 역사상 최대 취임식 인파였다"고 주장한 것을 스스로 풍자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날 시상식에서는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집권에 비판적인 시각을 보인 작품과 배우들이 다수 수상하며 무대를 정치풍자의 장으로 만들었다.
지난 1년여 동안 NBC 방송의 인기 코미디 프로그램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SNL)에서 트럼프 대통령 역할로 인기를 모았던 알렉 볼드윈과 같은 프로그램에서 클린턴 전 후보 역을 맡았던 케이트 매키넌이 각각 코미디 부분 최우수 남녀조연상을 휩쓴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SNL은 역대 최다인 22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됐다.
볼드윈은 수상 소감에서 "마침내 이렇게 이야기할 때가 된 것 같다. 대통령 각하, 여기 당신의 에미상이 있습니다"라고 말해 콜베어와 마찬가지로 과거 트럼프 대통령의 에미상 수상 불발을 꼬집었다.
'애틀랜타'로 최우수 코미디 남우주연상을 받은 흑인 배우 도널드 글로버는 "흑인을 가장 억압받는 사람들 명단에서 1등으로 만들어줘서 트럼프에게 감사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최고의 영예인 드라마 시리즈 부문 최고상이 '시녀 이야기'(The Handmaid's Tale)에 돌아간 것도 트럼프 시대에 대한 풍자로 여겨진다.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그린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드라마는 트럼프 시대 '권위주의 미국'의 암울한 자화상을 잘 묘사해 상을 받았다고 AFP는 보도했다.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 훌루가 제작한 '시녀 이야기'는 드라마 시리즈 최고상과 최우수 여우주연상(엘리자베스 모스)을 포함해 모두 5개 부문을 휩쓸어 역시 5개 부문을 석권한 HBO의 미니시리즈 '빅 리틀 라이즈'와 함께 최다 수상 작품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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