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 하늘 푸르고 바람 시원한 가을날에 천안삼거리 일대가 춤판으로 뜨겁게 흥청거렸다. 천안삼거리는 조선 시대에 한양과 경상도, 전라도를 연결했던 삼남 요로의 교통중심지. 처녀 능소와 선비 박현수의 사랑 이야기가 숨 쉬는 이곳에서 한국과 외국의 춤꾼들이 함께 어울려 열정과 감동의 무대를 연출했다. 제14회 천안흥타령춤축제가 그것이다.
'천안삼거리 흥~, 능수야 버들은 흥~, 제멋에 겨워서 흥~, 축 늘어졌구나 흥~, 성화가 났구나 흥~'
눈부실 정도로 청명한 가을날의 한낮, 해맑은 바람이 상큼하게 불어오자 천안삼거리공원의 버드나무 가지들도 절로 신바람이 났는지 흥타령 가락에 맞춰 산들산들 흔들렸다. 곱게 늘어진 맵시가 영락없이 아리따운 여인의 치맛자락을 닮았다 싶었다. 이에 화답하듯 공원 호수 한가운데에서는 하얀 분수가 기세 좋게 솟구치고, 풍물단의 사물연주 소리는 공원 일대를 쩌렁쩌렁 울려댔다. 곳곳의 무대에선 크고 작은 춤 공연이 열정적으로 쉴 새 없이 펼쳐졌다.
◇ 흥! 흥! 흥이로다!…신명의 춤 난장
국내외 춤꾼들이 한데 모여 멋과 흥을 맘껏 뽐내며 겨룬 '천안흥타령춤축제2017'이 지난 9월 13일부터 17일까지 닷새 동안 충남 천안시 삼룡동의 천안삼거리공원과 시내 일원에서 다채롭게 펼쳐져 방문객들에게 깊은 감동과 소중한 추억을 선사했다.
천안시와 천안문화재단이 주최·주관한 올해 축제는 '다 함께 흥겨운 춤을!'이라는 주제와 '흥으로! 춤으로! 천안으로!'라는 슬로건을 내건 가운데 '거리댄스퍼레이드' '전국춤경연대회' '국제춤대회' '전국대학치어리딩대회' 등의 프로그램들로 다채롭게 꾸며졌다.
천안의 흥타령 민요를 현대감각에 맞게 되살려 다양한 춤과 음악으로 어우러진 춤을 흥겹게 풀어냄으로써 신명과 감동, 화합의 한마당을 연출한다는 게 축제의 근본 취지. 국적, 성별, 나이 등 어떤 제한도 두지 않고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는 개방형 축제로 펼쳐져 더욱 눈길을 끌었다. 천안이라는 지역과 한국이라는 국경을 넘어 세계와도 허물없이 교류·소통함으로써 글로벌 춤축제로 자리매김하는 데 한 걸음 더 나아갔다는 것. 관람자들은 입장료, 주차료 등 어떠한 비용부담 없이 모든 프로그램을 홀가분하게 즐길 수 있었다.
◇ 화합·어울림의 한마당 '거리댄스퍼레이드'
이 같은 축제 취지를 한껏 살린 대표적 프로그램이 9월 15일 천안시내 신부동의 방죽안 오거리-터미널 사거리 구간에서 펼쳐진 '거리댄스퍼레이드'. 저녁 6시 30분부터 10시까지 3시간여 동안 550m 길이의 8차선 도로에서 펼쳐진 퍼레이드에는 외국 13개 단체와 국내 21개 단체가 참여해 만남과 신명, 일탈과 해방, 화합과 어울림의 초대형 한마당을 연출했다.
이날 행렬은 천안시충남국악관현악단의 취타대가 앞장선 가운데 국내외 팀이 따르며 전통과 현대의 춤으로 신명 난 거리 경연을 벌였다. 음악과 춤이 함께하고, 동양과 서양이 멋지게 어울린 퍼레이드는 참가팀들이 출발점인 방죽안 오거리에서 1차 경연한 뒤 차례로 행진했다가 종착점인 터미널 사거리에서 다시 경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거리가 악기 음향으로 쩌렁쩌렁 울리는 가운데 무용단 행렬이 지날 때마다 도로 양옆을 가득 메운 인파는 환호성과 박수로 뜨겁게 화답했고 일부 관람객들은 어깨춤을 덩실덩실 추며 행렬을 따라 나아가기도 했다. 퍼레이드는 수상팀 발표와 불꽃 퍼포먼스로 한밤의 대미를 장식하며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스라엘 호라 예루살렘 앙상블 팀의 미할 마쿠투크(16) 양은 "퍼레이드에 32명의 멤버가 참가했다"면서 "이 순간이 정말 즐겁다! 한국 방문은 이번이 처음인데 생애에서 가장 좋은 기억이 될 것 같다"고 웃음과 함께 한국말로 '고맙습니다'를 연발했다.
말레이시아 두타 부다야 팀의 무하마드 아리프(23) 씨는 "18명으로 구성된 우리 팀은 전통춤을 추는데 48시간 동안 논스톱 댄스를 해 기네스북에 등재됐다"고 자랑한 뒤 "한국에서 하루하루가 즐겁다. 거리댄스도 오랜 추억으로 남을 것"이라며 탬버린을 흔든 채 겅중겅중 춤을 춰댔다.
각 무용단의 열정적 행렬을 바라보는 관람객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천안 직장에서 근무한다는 국태수(29) 씨는 "가족과 함께 5년째 축제를 구경하는데 올해 퍼레이드가 더욱 화려하고 멋있는 것 같다"며 "한국문화는 물론 외국 문화를 한 장소에서 직접 체험할 수 있어 매우 만족한다"고 감회 깊은 표정을 지었다.
◇ 우리 고장에서 맘껏 즐긴 해외 민속춤
천안흥타령춤축제는 거리댄스퍼레이드가 그렇듯이 가무를 바탕으로 하되 단순한 '공연'이 아닌 참가단체의 '경연'이라는 데 방점을 두고 있다. 그 대표 프로그램이 전국춤경연대회와 국제춤대회.
천안삼거리공원에 설치된 흥타령극장과 버드나무극장에서 진행된 전국춤경연대회에는 130개 팀이 참가해 이 중 35개 팀에 각종 상이 풍성하게 주어졌다. 경연은 학생부, 일반부, 흥타령부, 실버부 등 4개 부문으로 나뉘어 9월 14일부터 17일까지 예선, 본선, 결선 등의 과정으로 진행됐다. 전국의 참가팀들은 춤, 노래, 의상으로 신명과 감동, 화합의 한마당을 연출했다.
국제춤대회는 본선, 결선 등의 과정으로 9월 15~17일 흥타령극장에서 개최됐다. 참가팀은 불가리아, 체코, 브라질, 필리핀, 멕시코, 한국 등 모두 14개국 단체. 이들 단체는 자국의 전통춤을 중심으로 발레, 재즈 등으로 치열한 예술적 경연을 벌였는데 영예의 대상은 브라질팀과 러시아팀이 나란히 차지했다.
이 가운데 9월 16일 오후 진행된 국제춤대회 본선 현장. 주말인 토요일이어서인지 야외 객석을 가득 메운 가운데 청명한 하늘과 선선한 가을바람 속에 두 시간여 동안 화려하게 펼쳐졌다. 잉카문명의 혼이 느껴지는 페루의 민속춤에서부터 경쾌하면서도 박진감이 넘치는 러시아의 전통춤까지 그 멋과 흥을 온전히 즐길 수 있었다.
호기심어린 표정으로 무대를 바라보던 김선옥(51·여) 씨는 "각국의 민속춤을 우리 고장에서 두 눈으로 직접 감상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라면서 "고운 선과 우아한 발놀림의 한국 전통춤도 오늘따라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필리핀 출신의 카멜 프란세스 로메로(35·여) 씨는 "지난 3월 한국에 와 세종시에서 일하고 있는데 필리핀 공연단의 한 단원이 친구여서 단숨에 달려왔다"며 "이곳에서 우리나라 춤을 구경할 수 있어 더욱 뭉클했다"고 웃음지었다.
◇ 능소와 박현수의 사랑 이야기 '능소전'
천안에 가면 삼거리공원을 비롯해 시내 곳곳에서 능수버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기생 능소와 선비 박현수의 사랑이 얽은 전설의 고장이어서 더욱 그렇다. 공원에는 이런 이야기를 담은 조형물이 안내판과 함께 설치돼 있고, 공원 옆에는 당시의 장면을 초가집으로 재현한 천안삼거리주막이 아담하게 서 있다.
옛날, 경상도 지방의 유봉서라는 홀아비가 어린 딸 능소와 함께 살고 있었다. 그는 변방을 지키는 군인으로 가라는 나라의 명을 받고 어린 딸만 홀로 둘 수 없어 같이 집을 나섰다가 천안삼거리 주막에서 하룻밤을 묵게 된다
변방에 딸을 데려갈 수 없었던 홀아비는 이곳 주막에 능소를 맡긴다. 그리고 버드나무 지팡이를 땅에 꽂으며 "이 지팡이에서 싹이 자라 큰 나무가 되면 아비가 돌아올 터이니 너무 슬퍼 말고 잘 지내고 있으라"고 당부한 뒤 길을 떠난다.
이후 능소는 심성 곱고 아름다운 주막의 기생으로 자라는데 어느날 전라도에서 한양으로 과거시험을 보러가는 박현수를 만나게 된다. 첫눈에 반해 하룻밤의 인연을 맺은 박현수는 능소와 혼인을 약속하고 한양 과거길에 오른 뒤 장원급제해 능소를 다시 찾아온다. 두 남녀는 혼인하고, 몇 해 뒤 능소는 아버지와도 감격의 재회를 한다. 이때 능소가 부른 노랫가락이 바로 흥타령. 아버지가 심어놓은 버드나무는 능소의 이름을 붙여 능소버들이라고 했다가 훗날 능수버들이라 부르게 됐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천지신명님께 비나이다! 부디 저희 아버님이 무사히 돌아오시도록 굽어살펴주소서!"
축제 기간 오후에 하루 한두 차례씩 공원 야외의 능소극장에서 공연된 마당극 '능소전'. 떠나가신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능소의 기도가 간절하게 무대를 울렸다.
그런가 하면 두 청춘남녀의 사랑가도 신명 나게 이어졌다. 극중 박현수가 "너를 보면 신바람이 절로 나고!"라고 외치자 능소는 "너를 만나면 아이가이가 두둥실 좋을씨고!"라며 활짝 웃는 얼굴로 화답했다. 객석에서는 '잘한다' '얼씨구' 등의 추임새가 거푸 터져나오고 일부 관객은 어깨춤으로도 부족했는지 덩실덩실 춤을 추며 무대로 다가갔다.
마당극을 감명 깊은 표정으로 바라보던 한명순(55·여) 씨는 "천안에 살면서도 '능소전'을 본 건 이번이 처음이다. 천안과 흥타령, 능수버들의 사연을 단번에 이해하고 즐길 수 있어 참 좋다"고 얼굴 가득 웃음을 올렸다.
◇ 춤꾼 6천 명, 관람객 125만 명
천안시는 능소 이야기와 천안흥타령에 착안해 1987년부터 '천안삼거리흥타령문화제'를 열어왔다. 그러나 축제의 개성과 특징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자 2003년 지금의 '천안흥타령춤축제'로 명칭을 바꾸고 내용과 형식도 전면적으로 일신했다.
그 결과 천안흥타령춤축제는 한국을 대표하는 춤축제로 자리매김하며 세계적 유명축제로 힘차게 발돋움하고 있다. 이는 축제의 영문명칭을 'Cheonan World Dance Festival'로 표기한 배경이기도 하다. 국적, 지역, 연령, 남녀, 노소 등을 모두 떠나 춤으로 하나 되자는 취지를 십분 살리려는 것.
주최 측은 올해 축제에 모두 125만 명의 관람객이 참가해 6천여 명의 춤꾼들이 시시각각으로 펼친 공연을 즐겼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체험 부스와 먹을거리 장터 등 부대 시설과 프로그램을 다채롭게 마련해 친구, 가족, 연인이 함께 찾아 알찬 추억을 만들어갈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각각의 프로그램은 지난해보다 한결 새롭게 변모한 형태로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종전의 '국제민속춤대회'에서 명칭이 변경된 '국제춤대회'의 경우 전통 민속춤의 한계에서 벗어나 발레, 모던 댄스, 재즈 댄스, 창작 댄스 등으로 장르의 폭을 확장했다.
이번 축제는 인종과 언어, 국경을 뛰어넘는 문화외교의 무대이기도 했다. 불가리아, 라트비아, 이스라엘, 루마니아, 스페인 등 7개국 대사들이 직접 방문해 춤축제를 즐겼는가 하면 천안시장과 천안문화재단 대표가 총재와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국제춤축제연맹(FIDAF)이 집행위원회를 열어 춤축제 관련 협력과 발전 방안을 모색했다.
구본영 천안시장은 "성공적인 축제를 위해 열정을 모아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며 "축제의 발전과 시민의 화합을 통해 천안을 세계적 문화도시로 발전시켜가겠다"고 말했다.
박상규 천안문화재단 대표는 "앞으로 심층도와 집중도를 한층 높여 볼거리, 즐길거리가 풍만한 축제로 발전하도록 노력하겠다"면서 "우리 축제의 비전은 문화로 시민이 행복해지고 나아가 세계문화가 교류하는 현장"이라고 강조했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7년 10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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