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모영 감독 "생사 오가는 '머구리'의 삶…짠한 아버지 이야기"

입력 2017-09-20 16:40   수정 2017-09-20 18:02

진모영 감독 "생사 오가는 '머구리'의 삶…짠한 아버지 이야기"

'올드 마린 보이' DMZ다큐영화제 개막작으로 선보여…11월2일 극장 개봉




(서울=연합뉴스) 김희선 기자 =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2014)로 역대 개봉 다큐멘터리 영화 최고의 흥행 기록을 세웠던 진모영 감독이 3년 만에 새 작품을 들고 나왔다.

노부부의 사랑 이야기로 480만 관객의 가슴을 울린 진 감독이 이번에 선보일 작품은 '올드마린보이'. 가족을 위해 생과 사의 경계를 넘나드는 탈북민 잠수부를 통해 이 시대 아버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올드마린보이'는 오는 21일 개막하는 DMZ국제다큐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첫 선을 보인 뒤 오는 11월 2일 극장에서 개봉할 예정이다.

20일 서울 합정동 영화사님아 사무실에서 만난 진 감독은 "4년 전 KTX 잡지에서 본 잠수부 '머구리'(잠수를 뜻하는 일본어 모구리에서 비롯된 옛말) 사진 한 장에서 출발한 작품"이라고 말했다.

"잠수복을 입은 머구리가 투구를 벗은 채 배에 팔을 걸치고 카메라를 응시하는 사진이었어요. 뒤에는 푸른 바다가 펼쳐져 있었는데 보통의 아름다운 바다와 달리 깊고 아득하고 무서운 느낌이었죠. '두 다리를 바다에 내어주고서야 식솔을 먹여 살릴 수 있었다'는 문구를 보고 이 이야기야말로 인생에 대한 은유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평범한 직장인들도 월급을 받기 위해서는 뭔가를 내줘야 하잖아요. 간도 쓸개도 내준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요."

4년 전 진 감독이 접했던 기사는 잠수병으로 두 다리를 못 쓰게 된 잠수부의 이야기였다. 진 감독은 당시 기사의 주인공과 영화 촬영에 들어가기로 했지만, 촬영 개시일까지도 그가 병원에서 퇴원하지 못해 수소문 끝에 탈북자 출신 머구리 박명호(52) 씨를 주인공으로 섭외하게 된다.

진 감독은 "2005년 탈북 당시 가족과 함께 생과 사의 바다를 건넌 박 씨는 이후에도 머구리로 살아가며 매일 생과 사의 바다를 들어갔다 나왔다 반복하는 운명을 지녔다"며 "박 씨의 운명이 지닌 상징성이 강하게 다가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 씨 역시 진 감독의 제안을 받고 처음에는 거절했다고 한다.

"이미 여러 매스컴을 통해 알려졌던 박 씨는 자신이 '따뜻한 남쪽 나라에 와서 잘 정착한 인물'로만 비치면서 자본주의의 선전물처럼 이용됐다는 느낌이 있었던 것 같아요. 남한 사회에 정착하면서 탈북자를 바라보는 차가운 시선과 텃새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는데 매스컴이 그런 이야기는 다뤄주지 않았던 거죠. 하고 싶은 이야기를 꺼내서 다해보자고 박 씨를 한 달간 설득한 끝에 승낙을 받아낼 수 있었습니다."





2014년 3월 촬영에 들어간 진 감독이 촬영을 마무리하기까지는 3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다. 작품 중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수중 촬영 장면 때문이었다.

"지상에서 촬영할 때처럼 배우를 계속 따라다니면서 원하는 장면을 찍을 수 있는 게 아니었어요. 수중 카메라 감독도 산소 탱크를 메고 수심 30m 아래로 들어가서 30분 정도 촬영하다가 올라오기를 반복해야 했는데 원하는 촬영 순간을 포착하기가 쉽지 않았죠. 1년 찍었는데도 뭔가 아쉬운 것들이 있어서 계속하다 보니 3년이나 걸렸네요."

수중 촬영일에는 온종일 배 위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던 진 감독은 수면에 반사되는 따가운 태양광선 탓에 백내장에 걸리기도 했다고 한다. 이렇게 바다와 싸우며 3년간 고생한 끝에 아름다우면서도 신비로운 바닷속 장면들을 얻어낼 수 있었다.

"머구리들의 동작은 묘한 느낌이 들어요. 다른 잠수부와 달리 심해에서 청동 투구를 쓴 채 쇠로 만든 신발을 신고 직립 보행하죠. 우주인처럼 보이기도 해요. 이들이 자신의 몸집만 한 문어와 만나는 장면은 정말 아름답다고 느꼈습니다."

주인공인 박명호 씨는 12년 전 아내와 아들 둘을 데리고 서해를 건너 북한에서 남한으로 내려왔다.

탈북 당시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은 공포를 겪었다"는 박 씨는 영화 속에서 "여기서도 매 순간이 생과 사의 경계선"이라면서 "하지만 생존을 위해서 투쟁하는 인간의 모습이 가장 아름답다"고 말한다. "지금도 잠수 일은 두려워요. 하지만 인생은 안 하고 싶다고 피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내가 아버지고 남편이니까."

진 감독은 "박 씨가 두려워하는 것은 물속에서 죽는 게 아니라 그 이후 자신이 사랑하는 가족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라며 "작품을 보면서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힘들게 일하는 아버지에 대해 안쓰러운 애정을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진 감독의 전작 '님아…'는 최근 많은 다큐 영화가 만들어지고 다큐 관객 저변이 넓어지는 데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우리가 실제로 사는 세계와 실제로 만나는 사람들이 펼쳐내는 감동은 가상의 세계가 주는 감동과 다른 무언가가 있다"며 "정말로 저런 사람이 있다면 나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희망과 공감을 준다는 것이 다큐의 힘"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큐의 저변이 계속 확대돼 사람들이 조금 더 마음을 열고 향유해 주기를 바란다"며 "거기에 '님아…'가 기여한 바가 있다면, 또 '올드마린보이'가 기여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면 기쁜 일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님아…'의 주인공 강계열 할머니의 안부도 궁금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1년 정도 혼자 지내시다가 횡성 읍내에 아파트를 얻어서 막내딸 가족과 함께 사세요. 일 년에 네 번은 찾아뵙는데 노인대학에도 가시고 동네 축제에도 귀빈으로 참석하시면서 건강하게 지내시고 있습니다."





hisunny@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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