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8년 만에 유엔 사회권 위원회 최종 권고서
정부·NGO 대표단 의견 전달 마쳐…공익 변호사들 대거 참여
(제네바=연합뉴스) 이광철 특파원 = 한국 사회의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가 유엔 권리규약에 따라 제대로 지켜지는지 심의하고 개선 방안을 권고하는 보고서가 이르면 내달 초 8년 만에 다시 나온다.
한국 정부 대표단과 비정부기구(NOG) 대표단은 이달 22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규약위원회(사회권 위원회)에 쟁점 목록 의견 전달을 마쳤다.
위원회는 이달 18일부터 다음 달 6일까지 62차 회의를 열고 대상 국가들의 전반적인 인권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사회권 위원회는 유엔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규약(사회권 규약)에 가입한 국가가 제대로 조약을 이행하는지 5년 단위로 심의한다.
한국은 1990년 사회권 규약을 비준했고 2001년, 2006년, 2009년 등 3차례 규약 이행 심의를 받았다.
1995년 20건, 2001년 30건이었던 위원회의 권고 건수는 2009년 83건으로 크게 늘었다.
NGO의 활동 폭이 넓어지고 사회권 관심이 확산한 것도 작용했지만, 쌍용차 대량 해고, 용산 참사, 국가인권위원회 역할 축소 등 이명박 정부 초기 벌어진 사안들에 위원회가 조목조목 개선을 권고한 영향도 컸다.
쌍용차 집회 강제진압, 용산참사는 경찰이 올해 7월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리기로 했을 정도로 현재진행형인 사안이다.
이번 심의에 한국에서는 모두 74개 NGO 단체가 참여했다.
김종철 어필 변호사, 김남희 참여연대 복지조세팀장(변호사), 류민희 희망을 만드는 법 변호사, 박영아 공감 변호사 등 공익변호사들과 나현필 국제민주연대 사무국장, 류미경 민주노총 국제국장 등이 회의에 참석했다.
사회권 위원회가 다루는 사안은 노동, 교육, 주거, 난민, 빈곤, 노인복지, 성 소수자 등 사회 전반에 걸친 이슈들을 망라한다.
최종 권고는 강제성도 없고 현행법과 충돌할 때도 있지만 유엔 권리규약에 따른 사회권 이행 정도를 살펴본다는 점에서 인권 성적표라고도 부를 수 있다.
이번 심의에서는 해고자 조합원 자격 때문에 법외노조가 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문제와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의 구속·실형 처벌, 단결권·단체교섭권 관련 국제노동기구(ILO) 핵심 협약 미비준 등이 비중 있게 다뤄졌다고 한다.
재벌의 다단계 간접고용, 한국 기업의 해외 사업장 강제노동, 농축산업 이주노동자 문제 등 사용자 문제와 복지 문제도 위원들의 관심을 끌었다.
전교조 법외 노조화, 파업 주동자 처벌, 재벌의 간접고용 심화 등은 박근혜 정부에서 벌어진 사안들이다.
김남희 참여연대 팀장은 "한국의 사회복지지출이 OECD 절반도 안 되고 노인빈곤과 자살률이 심각한 상황인데도 세금을 더 걷는 등 조세 정의를 실현하려는 적극적인 조치를 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도 나왔다"고 전했다.
포괄적인 차별금지법 제정, 성 소수자 보호 문제 등도 제기됐다.
류민희 변호사는 "동성결혼을 인정할 수 없다면 사실혼과 동일하게 유족연금, 건강보험 등 사회보장 혜택만이라도 적용할 수 있을 텐데 성 소수자 문제는 한국의 사회권에서는 안 보이는 부분이다. 성 소수자의 자살률은 통계에도 없다"고 말했다.
심의는 위원회가 올 3월 제시한 쟁점목록에 대한 정부 답변과 NGO 반박 답변을 듣고 양측 의견을 반영해 최종 권고를 내리는 식으로 진행된다.
이번 심의에는 난민, 노동, 성 소수자, 사회복지 등 각 분야의 공익변호사들이 NGO 대표단으로 참가했다. 2004년 처음 공익법무법인 공감이 출범하면서 공익변호사들의 활동폭도 넓어졌다.
김남희 변호사는 높은 연봉이 보장되는 대형 로펌을 그만두고 공익변호사로 뛰고 있고 김종철 변호사도 난민 문제에 '꽂혀' 난민 문제를 다루는 공익법무법인을 만들었다.
이들은 심의 분위기를 묻자 정부가 아직 준비가 덜 된 느낌을 받았다고 입을 모았다.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전 정부에서는 아예 귀를 막았던 민감한 문제들에 어떻게 대응할지 아직 내부 정리가 안 된 듯한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류민희 변호사는 "심의는 말 그대로 정부와 NGO간 생산적인 토론의 시간인데 정부 쪽에서는 현행 법조문을 읽는 수준으로 대응할 때도 있었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안에만 있다 보면 법 해석이 이래서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고정관념을 주입받는데 국제 사회에 그 해석을 제시하면 '아니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며 "정책 담당자들도 규범의 틀을 깨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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