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리독립 강행' 쿠르드족을 보는 엇갈린 시선

입력 2017-09-24 15:50  

'분리독립 강행' 쿠르드족을 보는 엇갈린 시선

"강대국에 배신 거듭 당한 피해자" 또는 "지역 불안 이용한 용병"





(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국제 사회의 만류와 반대를 무릅쓰고 이라크 쿠르드자치정부(KRG)가 25일(현지시간) 결국 분리·독립을 묻는 찬반투표를 강행할 것으로 보인다.

이 투표는 2005년 제정된 이라크 신헌법에 따라 애초 2007년 말까지 이뤄져야 했지만, 정국 불안으로 수차례 연기되다 유야무야됐다.

KRG는 이라크에서 분리된 주권 국가를 수립할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태세다.

쿠르드족은 중동에서 4번째로 수(약 3천만명)가 많은 민족임에도 유일하게 국가를 수립하지 못한 '비운의 민족'으로 잘 알려졌다.

민족의 기원은 이란 고원이지만 주로 현재의 이라크 북부 일대 산악지역에 터전을 잡았다. 이들은 100년 전 중동 국경을 확정한 영국과 프랑스 간 사이크스-피코 협정으로 이란, 이라크, 시리아, 터키 등 4개국으로 인위적으로 갈라졌다.

이후 이들은 각국의 강한 중앙정부에 탄압받으면서 '나라 없는 설움'을 겪어야 했다.

특히 이라크 북부의 쿠르드족은 이란을 도왔다는 이유로 1987∼1989년 화학 무기를 동원한 사담 후세인 정권의 잔악한 안팔 작전에서 '인종 청소' 수준으로 학살당한 아픈 역사를 견뎌야 했다.

쿠르드족이 모여 살던 할아브자 지역에서 벌어진 화학무기 학살은 후세인 철권통치에 시달리는 쿠르드족의 처참한 실상을 전 세계에 각인하는 비극이었다.

터키 정부는 1천만 명이 넘는 자국 내 쿠르드족을 테러조직으로 지목해 소탕작전을 벌였다.






일제 강점기를 겪은 한국으로선 동병상련을 느낄 수도 있는 대목이다.

20세기 들어 오스만튀르크, 영국, 미국 등 열강은 쿠르드족이 속한 정부를 공격하기 위해 쿠르드족에게 독립을 밀약하면서 이해타산에 따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였다. 그러나 쿠르드족은 번번이 배신당해 국가 수립의 숙원이 좌초됐다.

쿠르드족에게 2014년 이슬람국가(IS) 사태는 어떤 면에서 '기회'가 됐다.

KRG는 이라크 북부에서, 터키와 시리아 쿠르드족은 양국의 국경지대에서 IS의 공격을 피로 막아냈다.

KRG는 헌법상 보장된 자치지역의 40%에 해당하는 주변 지역을 사수했다. 이 지역은 이라크 중앙정부와 KRG가 관할권을 놓고 분쟁하던 곳이어서 KRG는 이참에 이를 '영토'로 포함하려 한다.

후세인 정권에 큰 피해를 봐 쿠르드족에 대한 동정론이 우세하긴 하지만 그 이면에는 이들에 대한 냉정한 비판도 상존한다.

쿠르드족은 혈통은 유사하지만 유대 민족과 달리 종교적인 결속력이 약하다. 대부분 수니파 무슬림이지만 시아파, 조로아스터교 등으로 다양한 편이다. 이는 이슬람이 과거 외부 침략으로 이식된 탓이다.

일부 전문가는 쿠르드족은 유목민으로, 부족성이 강할 뿐 3천만 명을 아우를 수 있을 만큼 역사적인 민족 정체성은 희미하다고 분석한다.

이 때문에 민족 전체의 목표보다는 각 지역에서 각자의 이익에 따라 행동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중앙집권 국가를 수립하지 못한 탓이기도 하지만, 20세기 들어 쿠르드족은 오스만튀르크에 동조해 아시리아인 학살에 가담하기도 했고, 1970년대와 2003년 미국을 거들어 후세인 정권 공격에 '용병'이 됐다.

1980년 이란-이라크전에서도 쿠르드족은 이란 편에선 반군이었다.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 실전 경험이 풍부한 '쿠르드 전사'의 전투력은 모리타니와 함께 최상위권으로 평가된다.

쿠르드족은 생존을 위해, 때로는 현실적 이득을 위해 중앙정부를 전복하는 데 가담하고 지역 안보 불안을 이용해야 하는 운명이었던 셈이다.

같은 민족이지만 KRG가 터키의 무장정파 쿠르드노동자당(PKK)에 우호적이지 않은 이유도 이런 배경에서다.

KRG는 터키가 자신의 자치지역으로 월경해 PKK 근거지를 폭격하는 군사 행위를 묵인한다. 심지어 1992년엔 KRG가 터키군과 합세해 이라크 북부의 PKK가 터키 영토에 진입하지 못하도록 대규모로 합동 공격하기도 했다.

터키가 KRG의 원유를 밀수하는 긴밀한 관계이기도 하지만 터키가 테러조직으로 지정한 PKK를 혈연을 이유로 도왔다가 자칫 자신의 독립국 수립에 지장이 있을 수 있다는 현실적 우려에서다.

이 때문에 KRG가 이라크 북부에서 독립 국가를 수립하더라도 주변국에서 탄압받는 쿠르드족 이민을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걸프전 직후인 1992년부터 사실상 자치권을 행사한 KRG는 자치지역 내 소수 민족을 자신이 후세인 정권에 당한 방식 그대로 탄압해 국제 인권단체의 비판을 받곤 했다.




hskan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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