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세운 세운상가…상인들은 임대료 인상 우려에 '시름'
월 임대료 최대 50% 상승…"와보지도 않고 세 올려달라 한다"
방문객 많아졌지만…도매·전문업체 위주라 매출 상승 기대 낮아
(서울=연합뉴스) 박초롱 기자 = "부산, 안양에 사는 점포주들이 세운상가가 좋아졌다는 얘길 듣고선 와보지도 않고 세를 올려달라고 합디다."
7개로 이뤄진 세운상가군 세 번째 건물인 대림상가에서 고무패킹업체를 운영하는 김모(81) 씨가 가게 문을 닫으며 한숨을 쉬었다.
40년 넘게 대림상가를 지켜온 김 씨는 가게가 비좁아 상가 안쪽 점포 두세 곳을 창고로 쓰고 있다. 그런데 얼마 전 느닷없이 창고 임대료를 5만 원씩 올려달라는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그는 "장사가 워낙 안되다 보니 한 달에 10만원, 20만원 더 내야 하는 것도 큰 부담이 된다"고 말했다.
한때 '전자산업의 메카'로 불렸던 세운상가가 개장 50년 만의 리모델링을 마치고 지난 19일 재개장했다.
시민들의 발걸음이 쉽게 세운상가로 닿을 수 있도록 어둡고 위험해 보였던 3층 높이 보행로를 깨끗하게 정비했다. 침체된 상가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보행로 주변 점포에는 청년 상인들과 스타트업을 입주시켰다.
재개장 일주일이 지났으나 세운상가 상인들은 기대감보다는 임대료 상승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세운상가 점포 임대료는 한때 월 100만원(30㎡대 기준)을 넘었으나 상가 노후화로 25∼30만원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러다 최근 들어 50%까지 임대료를 올려받는 점포주들이 생겼다.
40년간 고무패킹 업체를 운영해온 강정순 사장은 "임대료도 보증금도 다 오르는 추세"라며 "한 달 임대료가 20만 원짜리였던 곳이 30만원이 됐다고 한다"고 말했다.
세운상가에 입점한 업체는 450개가량으로, 이 중 90%가 세입자로 파악된다.
세운상가 경비원 서모 씨는 "임대료가 싸다는 얘길 듣고 세 얻으러 오는 사람들이 발길을 돌리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상인들의 임대료 걱정이 큰 이유는 상가가 활성화되더라도 자신의 매출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가 낮기 때문이다.
1989년 세운상가에 입주해 PCB(인쇄회로기판), 명판 제조업체를 운영해온 전대용(70) 사장은 "상가를 깨끗하게 정비한 뒤 사람이 많아진 것은 좋지만, 내 장사엔 도움될 것 없다"며 "우리 물건은 오다가다 들어와 사는 물건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전 씨는 "예전처럼 이 주변에서 제조를 하지 않으니 상권이 죽은 것"이라며 "삼성전자 반도체가 잘 돼봐야 국민들한테 도움되는 것은 딱히 없는 이치와 똑같다"고 했다.
고령화된 세운상가 상인들은 대부분 전화 주문을 받은 뒤 물건을 배송해주는 식으로 단골을 대상으로 영업한다. 인터넷 영업을 하지 않는 곳이 대다수다.
고무패킹 업체 사장 김 씨 역시 "구경하겠다고 몰려온 사람 모두 내 입장에서는 아무 이해관계가 없는 이들"이라고 일갈했다.
상인들의 반응은 업종별로 온도 차가 큰 편이다.
대림상가에서 35년간 식당을 운영한 창기순(64) 사장은 "내부 상인들 대상으로만 배달 장사를 했는데 이제 뜨내기손님도 온다"며 기대감을 내비쳤다.
창 사장은 '대청식당'이었던 상호를 최근 '모아밥상'으로 바꾸고 내외부도 대대적으로 뜯어고쳤다.
그는 "15년 전을 마지막으로 장사가 잘 된 적이 없는데, 손님들이 하나둘 오니 좋다"고 눈물을 글썽이며 "세운상가 내 업종이 다양화돼 보고, 먹고, 구매하는 곳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상가 환경이 좋아져 임대료가 오르고, 기존 상인들이 쫓겨나듯 떠나는 '젠트리피케이션'을 막기 위해 서울시는 지난달 상인회와 상생협약을 맺었다.
임대료를 한 번에 9% 이상 올리지 못하도록 노력하고, 대형 프랜차이즈 업종 입점은 막기로 했다.
그러나 협약엔 강제성이 없어 최근 상가를 매입한 임대인들과 한꺼번에 점포를 30∼40개씩 소유한 임대인 중심으로 세를 올리는 움직임이 있다는 게 현장 목소리다.
2013년 세운상가에 입주해 활동 중인 미디어 아티스트 최종원 씨는 "최근 들어 상인들이 임대료 걱정을 많이 한다"며 "강제성이 없는 상생협약에 의지하기보다는 정책적으로 급격한 임대료 상승을 억제할 수 있는 수단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19일 세운상가 재개장식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은 "다 지워버리고 허무는 것이 아니라 고쳐서 다시 쓰는 도시재생의 역사가 새롭게 시작됐다는 것을 알리는 증거가 바로 세운상가"라고 강조했다.
박 시장은 "세운상가 옆 세운4구역 재생을 위한 설계도 마무리돼가고 있어 이 구역 전체가 새로운 서울로 빛날 것으로 믿는다"고 밝혔다.
chopark@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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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임대료 최대 50% 상승…"와보지도 않고 세 올려달라 한다"
방문객 많아졌지만…도매·전문업체 위주라 매출 상승 기대 낮아
(서울=연합뉴스) 박초롱 기자 = "부산, 안양에 사는 점포주들이 세운상가가 좋아졌다는 얘길 듣고선 와보지도 않고 세를 올려달라고 합디다."
7개로 이뤄진 세운상가군 세 번째 건물인 대림상가에서 고무패킹업체를 운영하는 김모(81) 씨가 가게 문을 닫으며 한숨을 쉬었다.
40년 넘게 대림상가를 지켜온 김 씨는 가게가 비좁아 상가 안쪽 점포 두세 곳을 창고로 쓰고 있다. 그런데 얼마 전 느닷없이 창고 임대료를 5만 원씩 올려달라는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
그는 "장사가 워낙 안되다 보니 한 달에 10만원, 20만원 더 내야 하는 것도 큰 부담이 된다"고 말했다.
한때 '전자산업의 메카'로 불렸던 세운상가가 개장 50년 만의 리모델링을 마치고 지난 19일 재개장했다.
시민들의 발걸음이 쉽게 세운상가로 닿을 수 있도록 어둡고 위험해 보였던 3층 높이 보행로를 깨끗하게 정비했다. 침체된 상가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보행로 주변 점포에는 청년 상인들과 스타트업을 입주시켰다.
재개장 일주일이 지났으나 세운상가 상인들은 기대감보다는 임대료 상승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세운상가 점포 임대료는 한때 월 100만원(30㎡대 기준)을 넘었으나 상가 노후화로 25∼30만원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러다 최근 들어 50%까지 임대료를 올려받는 점포주들이 생겼다.
40년간 고무패킹 업체를 운영해온 강정순 사장은 "임대료도 보증금도 다 오르는 추세"라며 "한 달 임대료가 20만 원짜리였던 곳이 30만원이 됐다고 한다"고 말했다.
세운상가에 입점한 업체는 450개가량으로, 이 중 90%가 세입자로 파악된다.
세운상가 경비원 서모 씨는 "임대료가 싸다는 얘길 듣고 세 얻으러 오는 사람들이 발길을 돌리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상인들의 임대료 걱정이 큰 이유는 상가가 활성화되더라도 자신의 매출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가 낮기 때문이다.
1989년 세운상가에 입주해 PCB(인쇄회로기판), 명판 제조업체를 운영해온 전대용(70) 사장은 "상가를 깨끗하게 정비한 뒤 사람이 많아진 것은 좋지만, 내 장사엔 도움될 것 없다"며 "우리 물건은 오다가다 들어와 사는 물건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전 씨는 "예전처럼 이 주변에서 제조를 하지 않으니 상권이 죽은 것"이라며 "삼성전자 반도체가 잘 돼봐야 국민들한테 도움되는 것은 딱히 없는 이치와 똑같다"고 했다.
고령화된 세운상가 상인들은 대부분 전화 주문을 받은 뒤 물건을 배송해주는 식으로 단골을 대상으로 영업한다. 인터넷 영업을 하지 않는 곳이 대다수다.
고무패킹 업체 사장 김 씨 역시 "구경하겠다고 몰려온 사람 모두 내 입장에서는 아무 이해관계가 없는 이들"이라고 일갈했다.
상인들의 반응은 업종별로 온도 차가 큰 편이다.
대림상가에서 35년간 식당을 운영한 창기순(64) 사장은 "내부 상인들 대상으로만 배달 장사를 했는데 이제 뜨내기손님도 온다"며 기대감을 내비쳤다.
창 사장은 '대청식당'이었던 상호를 최근 '모아밥상'으로 바꾸고 내외부도 대대적으로 뜯어고쳤다.
그는 "15년 전을 마지막으로 장사가 잘 된 적이 없는데, 손님들이 하나둘 오니 좋다"고 눈물을 글썽이며 "세운상가 내 업종이 다양화돼 보고, 먹고, 구매하는 곳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상가 환경이 좋아져 임대료가 오르고, 기존 상인들이 쫓겨나듯 떠나는 '젠트리피케이션'을 막기 위해 서울시는 지난달 상인회와 상생협약을 맺었다.
임대료를 한 번에 9% 이상 올리지 못하도록 노력하고, 대형 프랜차이즈 업종 입점은 막기로 했다.
그러나 협약엔 강제성이 없어 최근 상가를 매입한 임대인들과 한꺼번에 점포를 30∼40개씩 소유한 임대인 중심으로 세를 올리는 움직임이 있다는 게 현장 목소리다.
2013년 세운상가에 입주해 활동 중인 미디어 아티스트 최종원 씨는 "최근 들어 상인들이 임대료 걱정을 많이 한다"며 "강제성이 없는 상생협약에 의지하기보다는 정책적으로 급격한 임대료 상승을 억제할 수 있는 수단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19일 세운상가 재개장식에서 박원순 서울시장은 "다 지워버리고 허무는 것이 아니라 고쳐서 다시 쓰는 도시재생의 역사가 새롭게 시작됐다는 것을 알리는 증거가 바로 세운상가"라고 강조했다.
박 시장은 "세운상가 옆 세운4구역 재생을 위한 설계도 마무리돼가고 있어 이 구역 전체가 새로운 서울로 빛날 것으로 믿는다"고 밝혔다.
cho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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