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만에 국회 개헌특위 가동…개헌 분위기 무르익어
핵심 쟁점은 대통령 권력 분산·기본권 확대·지방자치 강화
개헌특위 '지지부진' 지적도…내년 3월까지 개헌안 발의 목표
(서울=연합뉴스) 이한승 기자 = 1987년 10월 27일. 대통령 직선제와 5년 단임제를 핵심으로 하는 제9차 개헌안이 국민투표에 부쳐져 총 유권자 78.2%의 투표와 투표자 93.1%의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된 역사적인 날이다.
군부 독재시대를 끝내야 한다는 시민 정신이 쟁취해낸 전리품이었다. 하지만 30년이 지난 지금, 이 '87년 체제'는 시대적 소임을 다한 '헌 옷'이 된 만큼 현실에 맞는 새 헌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분출하고 있다.
개헌을 위한 분위기도 어느 정도 무르익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앞서 지난 5월 19일 5당 원내대표들과의 청와대 오찬 회동에서 대선 공약대로 내년 6월 지방선거에서 개헌안을 국민투표에 부치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정세균 국회의장 역시 "어떻게 하든지 개헌에 성공해야 한다는 생각"이라며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개헌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개헌특위)는 현재 내년 6월 지방선거 때 개헌안을 국민투표에 부치겠다는 목표로 활발하게 논의를 이어가고 있으나, 논의 진전이 더뎌 물리적으로 쉽지 않다는 회의론도 나온다.
◇30년 만에 국회 개헌특위 가동…16차례 회의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는 지난 1월 1일부터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국회 차원에서 개헌특위가 가동되는 것은 1987년 이후 30년 만에 처음이다.
현재 위원장은 자유한국당 이주영 의원이, 여야 간사는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의원, 자유한국당 정종섭 의원, 국민의당 김관영 의원, 바른정당 하태경 의원이 각각 맡고 있다.
개헌특위는 현재까지 16차례 전체회의를 열었다. 또 기본권에 대해 논의하는 제1소위원회는 7차례, 정부 형태에 대해 논의하는 제2소위원회는 지금까지 11차례 회의를 했다.
개헌특위는 또 지난달 29일 부산·울산·경남 지역을 시작으로 11개 지역에서 권역별 헌법개정 국민대토론회도 개최해 국민 의견을 수렴했다.
◇개헌 논의의 최대 쟁점은…대통령 권력 분산
이번 개헌 논의의 최대 쟁점은 대통령 권력의 분산이다.
개헌특위는 현행 대통령 하에서 대통령에게 과도하게 집중된 권한을 분산해야 한다는 데에는 어느 정도 의견의 일치를 보고 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정부 형태에 대해서는 의견이 제각각이어서 합의점 모색이 좀체 쉽지 않은 상황이다.
민주당 이인영 간사는 최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우리당 소속 상당수 국회의원이 4년 중임의 대통령 중심제 개헌안을 주장하고 있다"며 4년 중임제에 무게를 둔 듯한 발언을 했다.
한국당 홍준표 대표는 대선 후보 시절 4년 중임 분권형 대통령제를 주장한 바 있다.
국민의당은 대선을 앞두고 대통령의 임기를 5∼6년 단임으로 하고, 대통령은 직접 선출하되 국무총리는 국회에서 뽑아 양측이 권한을 나누는 분산형 대통령제를 내놓았다.
바른정당은 대선 공약으로 통일 전 대통령 4년 중임제, 통일 후 의원내각제를 주장하기도 했다.
개헌특위는 대통령 권한 분산과 더불어 지방분권을 강화해야 한다는데도 공감대를 형성했지만, 지방자치단체의 자치입법권을 어느 정도까지 확대할지를 포함해 구체적인 분권 수준에 대해서는 여전히 팽팽한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기본권 확대도 핵심 의제다.
여야는 헌법에 안전권·정보기본권·보건권이나 어린이·청소년·노인·장애인 또는 소비자 등 약자를 위한 권리 조항을 신설하는 데에 대체로 공감하고 있다. 또 헌법에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명시하자는 데에도 공감대가 형성도 있다.
그러나 생명권·망명권 그리고 사상의 자유에 대한 조항을 신설할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특히 '동성애 합법화 논란'은 개헌 논의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다.
쟁점은 현재의 헌법상 '양성평등'이란 표현을 '성평등'으로 바꾸는 것이 적절한지의 문제로, 기독교계는 '양성평등'을 '성평등'으로 바꾸는 경우 동성애 합법화로 연결될 수 있다고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와 함께 5·18 민주화운동과 6월 민주항쟁 등의 역사적 사실을 헌법 전문에 추가할지를 놓고도 여야가 토론을 벌이고 있다.
또 감사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강화하기 위해 현재 대통령 소속으로 규정하고 있는 헌법 체계를 바꿔야 한다는 데에도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이 밖에 국회의원의 불체포·면책특권 폐지와 대통령 특별사면권 제한, 선거권·피선거권 연령 하향,대법원장 인사권 제한, 헌법재판소 재판관 자격제한 완화 등도 쟁점이다.
◇지방선거 국민투표 가능할까…현재까지는 논의 '지지부진'
개헌특위가 가동된 지 9개월이 됐지만, 현재까지의 논의 결과를 보면 초라하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결론이 난 쟁점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국민의당 이상돈 의원은 지난달 20일 전체회의에서 "갈수록 의견이 모이는 게 아니라 평행선으로 가는 것 같다"며 "의견이 모이지 않는 부분은 의제에서 빼거나 합의하는 것으로 결단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6월 지방선거에서 개헌이 가능하겠느냐는 회의적인 목소리도 적지 않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예열 단계'에 불과했던 만큼 국정감사가 끝나고 11월부터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가면 내년 6월 지방선거에서 국민투표가 가능하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다만 이 과정에서 쟁점별로 건건이 합의를 보기보다는 일괄타결 방식으로 접점을 찾아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개헌특위는 늦어도 내년 2월까지는 국회 차원에서 합의를 이루고, 3월에는 개헌안을 발의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국회 의결을 하려면 국회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국회에서 개헌안을 의결하면 30일 이내에 국민투표에 부쳐야 하고, 국회의원 선거권자 과반수의 투표와 투표자 과반수의 찬성을 얻으면 헌법 개정안은 확정된다.
jesus786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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