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헤란=연합뉴스) 강훈상 특파원 = 국제사회의 압박과 우려에도 이라크 쿠르드자치정부(KRG)가 분리·독립 투표를 강행하는 정면돌파 작전의 선봉엔 마수드 바르자니(71) 수반이 있다.
바르자니 수반은 2005년 6월부터 12년간 KRG의 수반을 맡아 극도로 불안한 이라크 정세를 이용하면서 주변 열강 사이에서 쿠르드족의 이익을 위해 현명하게 내·외치를 폈다는 평가를 대체로 받는 편이다.
2005년은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사담 후세인 철권통치가 종식되고 연합군 임시행정청이 해체(2004년)된 뒤 이라크 제헌의회가 수립된 해다.
이 제헌의회는 그해 10월 이라크 신헌법을 선포하면서 1992년부터 이어진 북방 비행금지 구역을 확대해 KRG의 자치지역을 이라크 북부 3개주로 공식화했다.
바르자니 수반은 근현대사에서 이라크 쿠르드족의 분리·독립의 중추가 된 집안 출신이다. 바르자니라는 성씨 역시 현재 아르빌 주 북쪽 바르잔이라는 마을 이름에서 비롯됐을 만큼 이 지역에 뿌리박은 '토박이' 출신이다.
그의 할아버지(모하마드 바르자니)와, 아버지(무스타파 바르자니)도 쿠르드 민족주의자로, 오스만튀르크와 이라크 후세인 정권에 맞서 쿠르드족의 독립 국가 수립을 염원했던 '독립투사'다.
KRG의 집권 여당이라고 할 수 있는 쿠르드민주당(KDP)에 3대 모두 몸담았고 바르자니 수반은 아버지에 이어 1979년부터 당수를 맡고 있다.
이런 이유로 이라크 쿠르드족의 분리·독립운동은 바르자니 집안을 떼놓고 논할 수 없다. 독립 국가 수립에 역대로 가장 근접한 최근 쿠르드족의 운명을 바르자니 수반이 이끄는 것은 정통성 면에서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바르자니의 존재감이 큰 만큼 그늘도 짙다.
바르자니 수반이 정해진 임기를 혼란을 틈타 연장한 것은 반대 진영에서 제기하는 약점이다.
2009년 7월 KRG에서 처음으로 시행된 수반 직접선거에서 당선된 그는 2013년 8월 임기가 끝났다. 그러나 당시 KDP가 장악한 의회는 정국 불안을 이유로 그의 임기를 2년 더 연기했다.
연장된 임기가 끝난 2015년 8월엔 이슬람국가(IS) 격퇴전 상황임을 내세워 국정 자문기구(슈라위원회) 요청을 근거로 논란속에 임기를 또 2년 더 늘였다. 당시 자문기구는 '2년 뒤 수반 선거를 할 때까지'라고 했지만 2년이 더 지난 지금까지 선거가 치러지지 않았다.
석연치 않은 2번의 임기 연장으로 12년간 KRG의 권좌를 지킨 데다 자치정부에 반대하는 언론과 시민단체를 탄압한 탓에 그는 독재자라는 오명을 얻기도 했다.
KRG의 집권당인 KDP의 당수는 1946년 아버지 때부터 71년간 바르자니 부자의 차지였고, 조카 네체르반을 총리로 두 번이나 지명했다.
그의 아들 마스루르(48)도 KDP의 고위 간부 겸 쿠르드지역안보위원회 위원장이다.
바르자니 집안은 이라크 쿠르드자치지역의 정치권력 뿐 아니라 경제권도 쥔 최고의 기득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KRG에서 이뤄지는 각종 자원, 인프라 사업의 이권을 독차지한다는 의혹과 비판을 받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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