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앞두고 소화불량·두통 호소하는 '명절 증후군'
전문가들 "가족간 배려·상대 불편한 대화 자제 등 필요"
(전국종합=연합뉴스) 변우열 기자 = 결혼 5년 차인 주부 김모(36)씨는 며칠 전부터 신경이 곤두서 사소한 일에도 짜증이 난다.
시댁에서 차례상과 음식을 준비하고, 밀려드는 손님을 맞으며 긴 추석 연휴를 보낼 일을 걱정하다 보니 지레 소화도 안 되고 두통에 시달리는 '명절 증후군'이 찾아온 것이다.
김씨는 음식 만들기가 익숙지도 않은 결혼 첫해인 2013년 추석 경북에 있는 시집에서 며칠간 제수 준비를 하고 끼니때마다 식사를 챙기느라 '음식과의 전쟁'을 치렀다. 설 연휴가 끝난 뒤 며칠을 끙끙 앓으면서 출근도 하지 못했다.
그 후 명절만 다가오면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그나마 올해 설에는 직장의 당직을 핑계로 무사히 설 연휴를 보냈지만 올해 추석 연휴는 10일간 이어지는 것이 더 큰 부담이다.
김씨는 "신혼 시절 가뜩이나 어렵게 느껴졌던 시댁에서 익숙지 않은 음식과 차례상을 차리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며 "친구를 만나겠다며 외출한 미혼의 시누이와 소파에 누워서 TV만 시청하는 남편을 보면서 더 화가 났다"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김씨의 증상은 전형적인 '명절 증후군'이다.
미혼자, 취업 준비생 등도 또 다른 이유로 명절 스트레스를 받는다.
미혼자들은 친지들이 농담으로 건네는 "언제 국수를 줄 거냐"라는 질문을 받는 것이 여간 불편하지 않다.
취업 준비생들은 자신을 걱정하는 가족들을 보면 즐거워야 할 명절이 오히려 가시방석에 앉은 듯 힘든 시간이 되기 때문이다.
청주성모병원의 이재영 정신의학과장은 "최근 하루에 2∼3명 정도가 명절 증후군으로 상담을 받으러 온다"며 "올해는 추석 연휴 기간이 예년의 배에 달하는 열흘이어서 주부 등이 느끼는 압박감이 더 큰 것 같다"고 분석했다.
병원을 찾는 사람 대부분은 우울증이나, 무기력, 잦은 짜증 등 심리적 변화를 호소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불면에 시달리거나 몸살, 두통, 복통 등 신체적 고통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이런 명절 증후군이 주는 스트레스의 강도가 만만치 않다.
올해 초 충남대병원 가정의학과 김종성 교수팀이 기혼남녀 56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기혼 여성이 느끼는 명절 스트레스 점수는 32.4점으로 나타났다.
이는 '1만 달러 이상의 부채'가 주는 스트레스(31점)보다도 높은 수치로, '부부싸움 횟수가 증가할 때'(35점)와도 비슷한 수준으로 분석됐다.
김 교수팀은 "우리나라는 가정생활 책임이 일차적으로 여성에게 집중돼 있다"며 "여성의 역할이 명절이란 특수 상황에서 더욱 강조돼 여성이 더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1년 중에 가사노동의 강도가 가장 높은 명절을 전후해 주부들이 받는 심리적 부담이 강도 높은 스트레스로 이어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연구결과다.
전문가들은 명절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가족들의 배려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매년 치솟는 명절 물가 속에서 차례상과 손님맞이 음식 준비가 주부들에게 적지 않은 압박감을 주는 만큼 가족이 집안일을 덜어주고, 도와주는 분위기를 조성할 것을 조언한다.
또 미혼자, 취업 준비생 등 상대방이 불편하게 느낄 수 있는 말 등도 자제해야 한다.
본인이 명절 연휴에 받는 심리적 스트레스 못지않게 다른 가족, 친지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는지 등 생각하는 배려가 필요하다.
청주성모병원 이재영 정신의학과장은 "우리나라의 문화에서 주부들의 명절 스트레스를 해결하는 방안이 상당히 제한적이므로 남편을 비롯한 가족의 충분한 이해와 세심한 배려, 적극적인 협조가 절대적"이라며 "주부가 겪는 육체적, 심리적 고통을 가족이 함께 나누고 이해하는 마음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또 "명절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피할 수 없으면 즐긴다는 긍정적인 사고를 갖는 것이 필요하다"며 "명절 후 자신만을 위한 여가를 갖는 것이 필요하고, 우울증 등이 2주 이상 지속하면 정신과에서 적절할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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