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사이다 '별표사이다' 인천서 제조 이후 인기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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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연합뉴스) 강종구 기자 = 중년이나 노년층에게 '인천 앞바다'하면 무엇이 떠오르느냐고 물으면 '사이다'라는 답부터 나오는 경우가 많다.
코미디언 고(故) 서영춘 선생이 1960년대 '원자폭소대잔치'라는 프로에서 유행시킨 '속사포 랩'도 40∼50대 이상 남녀라면 대부분 입으로 흥얼거릴 수 있을 정도다.
"이거다 저거다 말씀 마시고/ 산에 가야 범을 잡고 물에 가야 고길 잡고/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떴어도/ 고뿌(컵의 일본어 발음) 없이는 못 마십니다"
그렇다면 하고많은 바다 중에서 왜 '인천 앞바다 사이다'라는 말이 나왔을까.
의문은 사이다의 국내 유입 경로를 따져보면 어렵지 않게 풀린다.
우리나라에서 사이다 역사는 인천에서 시작됐다.
1905년 2월 일본인 히라야마 마츠타로(平山松太郞)는 인천 신흥동에 '인천탄산수제조소'라는 사이다 공장을 세우고 국내 첫 사이다인 '별표사이다'를 출시했다.
1910년 5월에는 같은 동네에서 경쟁사 '마라무네제조소'가 창업, '라이온 헬스표 사이다'를 출시할 정도로 사이다는 초창기부터 인기를 끌었다.
1916년 9월 미국 월간지 '월드 아웃록'에는 경인선 기차가 등장하는데 객차 하부에 '별표사이다' 광고가 붙은 모습이 이채롭다.
당시로써는 첨단 교통수단인 기차에 광고를 했다는 점에서 사이다의 인기를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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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다는 원래 유럽에서 사과를 발효시켜 만든 알코올성 음료다.
1853년 우리나라에 영국 해군을 통해 처음 소개됐을 땐 사이다는 사과를 발효시켜 만든 6도의 사과술이었다. 오늘날의 톡톡 쏘는 시원한 탄산 사이다와는 거리가 있었다.
일본 요코하마에서 여러 향료를 사용한 '샴페인 사이다'라는 이름의 제품을 개발했는데,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오늘날 '사이다'라는 이름이 탄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광복 후에도 사이다의 인기는 계속됐다.
전국 12개 업체 중 인천의 '스타사이다'와 평양의 '금강사이다'는 최고 인기를 누렸다.
1950년 5월 서울에서 '칠성사이다'가 출시되며 사이다 시장의 판도가 바뀌긴 했지만 인천에서 만들어진 스타사이다는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떴어도~' 만담 노래를 탄생시킬 정도로 대중의 인기를 끌었다.
지금은 인천에 남아있는 사이다 공장이 없지만, 인천시는 짜장면·쫄면·계란빵 등과 함께 사이다를 인천에서 시작된 명물로 소개하며 홍보를 강화하고 있다.
iny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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