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조상] ② '명절에 고향 등지고 해외로'…전통 규범 약화

입력 2017-10-03 07:02   수정 2017-10-03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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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조상] ② '명절에 고향 등지고 해외로'…전통 규범 약화

"경로효친 퇴색해 아쉬워…'뿌리' 중요성 인식하는 교육 필요"

(전국종합=연합뉴스) 임채두 기자 = 전북 전주에 거주하는 박모(34)씨는 몇 달 전부터 올 추석 연휴를 손꼽아 기다렸다.

사상 유례없는 최장 10일의 연휴를 즐기기 위해 홍콩행 비행기 티켓과 호텔을 예약해 뒀기 때문이다.




회사에 휴가를 신청하지 않고도 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온 가족과 단란한 시간을 보낼 생각에 들떴다.

해외로 나가기 위해 명절을 앞두고 이미 일부 친지들도 찾아뵀다.

하지만 조부모의 산소를 찾지 못한 점이 내내 마음에 걸린다.

장남이 추석에 조상을 찾지 않았다는 눈총을 받을까 봐 걱정도 했지만, 이번 여행은 부모님을 모시고 가는 가족 여행이기 때문에 조상들께서 이해해 주시리라 애써 자위해본다.

대신 내년 초 설 때는 반드시 조상을 찾아뵙기로 다짐했다.

박씨는 "10일간이나 이어지는 이번 연휴는 가족과 함께 모처럼 여유 있게 해외여행을 떠날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라면서 "조상님들도 이번만큼은 부모님, 아이들과 소중한 시간을 갖는 것을 이해해 주시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명절이면 조상을 모시고 친척과 얼굴을 맞대기보다 가족, 친구, 연인과 시간을 보내려는 세태가 확산하고 있다.

묘지기까지 둬가며 조상의 봉분을 지켰던 과거와는 크게 다른 풍경이다.

이는 유교사상을 중심으로 한 전통 규범을 중시하던 세대들이 사라지고 대신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한 개인적 사고가 만연하면서 불거진 현상들 때문으로 해석된다.

전국에 산재한 무연고 묘의 실태도 이러한 세태와 무관하지 않다.




조사 주체에 따라 다르지만, 전국의 무연고 묘는 200여 만기에서 최대 700여 만기에 이른다는 것이 학계의 중론이다.

전문가들은 세월이 지나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혈연공동체 의식이 헐거워지고 조상 묘를 돌봐야 한다는 도덕적 의무가 가벼워진 점을 무연고 묘 증가 원인으로 꼽았다.

설동훈 전북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요즘 세대는 조상의 묘를 돌본다는 데 큰 의미를 두지 않는 것 같다"면서 "그만큼 전통 규범에 소홀하고 이에 대한 도덕적 의무가 약해졌다는 증거다"라고 말했다.

부부와 미혼의 자녀로 이뤄진 소가족 시대 속에서 경제 불안에 따른 미혼남녀의 증가 등이 조상 봉양의 책임성 결여로 이어진다는 해석도 나온다.

미덕을 중시하기보다는 자기중심적 현실의 삶에 치중하는 젊은 세대들의 욕구도 한 이유로 꼽힌다.

설 교수는 "글로벌 시대가 도래한 이후 국내 지역 간, 해외 간 이동이 자유롭다 보니 오랜 시간 고향을 등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면서 "어쩌면 해가 갈수록 무연고 묘는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고 한국인의 미덕인 '조상 섬김' 의식도 희미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강성수 전주향교 유도회장도 "핵가족화와 인구이동, 경제 불안이 겹쳐 조상을 돌보는 일이 좀처럼 쉽지 않다"며 "생업에 치여 명절에도 고향에 내려가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고 자신 이외에 조상을 챙길 형제도 없으니 자연스레 성묘나 벌초는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어버이를 공경하고 이런 마음을 주변 어른에게 확대하는 '경로효친' 사상을 점차 찾아볼 수 없게 돼 씁쓸하다"고 아쉬워했다.

조상의 은덕을 기리는 전통을 이어가고 '뿌리'가 주는 의미를 배우는 교육이 절실한 실정이다.

원광대학교 이다운 역사교육학과 교수는 "우리 가족의 뿌리를 찾는 일은 곧 역사를 배우는 일"이라며 "개인주의와 편의주의가 횡행해 자신밖에 모르는 풍조가 아쉽지만, 학교 정규교육 과정에서 조상의 기리는 의미를 가르치고 섬기는 법을 교육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유교사상의 역사를 연도와 인물 위주로 교육하는 현실에서 벗어나 유교의 근원에 대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do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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