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이용당한 또 다른 피해자" 징역1년 선고한 원심 파기
(청주=연합뉴스) 전창해 기자 = 보이스피싱 사기단에 속아 인출책 역할을 한 30대가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대기업 보험설계사로 일하던 최모(36)씨는 지난해 개인사업장을 열었다.
하지만 불경기에 동업자와 갈등까지 겹치면서 채 1년을 버티지 못하고 지난 2월께 사업을 접어야 했다.
그는 새 직장을 구하기 전 용돈이라도 벌 요량으로 아르바이트를 찾기 위해 인터넷 구인구직 사이트에 글을 올렸다.
며칠 뒤 A업체의 관리실장이라는 사람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관리실장은 최씨에게 A업체를 명품시계 및 귀금속 수입 판매업체라고 소개한 뒤 납품대금 수금 아르바이트를 제안했다.
다만 납품 과정에서 세금이 과다하게 부과돼 이를 피하기 위해 거래처에서 납품 대금을 은밀히 현금으로 받아와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 말을 믿은 최씨는 지난 3월 7일부터 수금 업무를 시작했다.
그로부터 이틀 뒤 최씨는 관리실장의 지시에 따라 수금하러 갔다가 잠복해있던 경찰에 체포됐다.
영문도 모른 채 수사를 받던 최씨는 비로소 자신의 수금 업무가 보이스피싱 조직의 범죄금을 챙기는 것임을 알게 됐다.
최씨는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검찰은 그가 보이스피싱 범행임을 알고도 동조했다고 판단해 사기 혐의로 구속기소 했다.
검찰은 최씨가 회사에 한 번도 출근한 적이 없는 점, 채용 과정·근무 형태·급여지급 방법·수금절차 등이 통상적인 회사의 업무와 다른 점, 검거 현장에서 어색한 행동을 반복한 점 등을 판단 이유로 제시했다.
1심 재판부 역시 검찰은 같이 최씨의 유죄를 인정,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청주지법 형사항소2부(정선오 부장판사)는 4일 최씨에 대한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의 일관된 진술과 주변 사정들에 비춰보면 그의 부주의를 탓할 수는 있겠지만 이 사건 수금 업무가 보이스피싱 범행의 일환이었다는 사실을 알았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무죄 선고 이유를 설명했다.
재판부는 또 "보이스피싱 범죄 관련 경험이 전혀 없는 피고인으로서는 자신이 거기에 연루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을 것으로 보이고, 채용된 지 3일 만에 경찰에 체포돼 이를 의심할 만한 시간적 여유도 없어 보인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보이스피싱 피해자들 또한 유사한 방법으로 속아서 돈을 송금하게 되는 점에 비춰보면 피고인 역시 조직원에게 속아서 이용당한 또 다른 피해자일 개연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검찰은 이 판결에 불복, 대법원에 상고했다.
jeonc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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