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서 학술토론회…서지학자·문화재청 참가
![](https://img.yonhapnews.co.kr/photo/yna/YH/2017/09/28/PYH2017092830610001300_P2.jpg)
(서울=연합뉴스) 박상현 기자 = "번각본(금속활자로 인쇄한 책을 목판으로 다시 새겨 찍은 책)은 금속활자본보다 글씨가 굵은 경향이 있습니다. 기술이 아주 좋은 각수라면 활자와 똑같이 목판을 새기겠지만, 아니라면 다소 차이가 날 수 있습니다."(남권희 경북대 교수)
"증도가자는 101점입니다. 활자 하나하나에 대한 정밀한 검증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문화재청은 진위를 가린 것이 아니라 보물로 지정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 검토했습니다."(정제규 문화재청 전문위원)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장인 국민의당 유성엽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의원, 자유한국당 이철규 의원이 28일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개최한 학술토론회에서 '증도가자'(證道歌字)의 진위를 놓고 또다시 공방이 벌어졌다.
증도가자는 보물로 지정된 불교 서적인 '남명천화상송증도가'(南明泉和尙頌證道歌, 증도가)를 인쇄할 때 사용했다는 주장이 제기된 금속활자다.
보물 증도가(보물 758-1호)는 1239년 제작된 목판으로 찍은 번각본으로, 이전에 금속활자로 찍은 서적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증도가자'가 진품으로 공인되면 1377년 간행된 서적인 '직지심체요절'보다 최소 138년 앞서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 관련 유물이 돼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는 지난 4월 증도가자에 대한 보물 지정 안건을 심의해 지정 가치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당시 문화재위원회는 서체 비교와 조판(組版, 판에 활자를 맞춰서 짜넣는 작업) 검증 결과, 증도가자는 증도가를 인쇄한 활자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 소장 경위와 출처가 불분명하다는 점도 보물로 지정할 수 없는 이유라고 밝혔다.
다만 '증도가자'의 성분 분석 결과에 따르면 제작 시기를 특정할 수는 없지만 청동 재질의 오래된 금속활자일 가능성은 있다고 설명했다.
보물 지정 심의 이후 처음 열린 토론회에서 서지학자들은 문화재청의 조사 결과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남권희 경북대 교수는 서체, 유부현 대진대 교수는 조판, 조형진 강남대 교수는 활자의 주조 방법을 중심으로 반론을 폈다.
지난 2010년 '증도가자'를 처음 공개한 남권희 경북대 교수는 이민호 경북대 교수의 의견을 인용해 "문화재청의 결과만으로는 활자와 번각본이 동일한 서체인지를 신뢰성 있게 판단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또 유 교수는 "목판이 수축하는 경향을 고려한다면 증도가자로 증도가를 조판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며 "문화재청 조사에는 모순점이 있다"고 공격했다.
반면 강태이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연구원은 일부 증도가자에 묻어 있었던 먹의 방사성 탄소연대 측정 결과, 고려시대 것으로 드러났다는 기존 연구에 대해 "현대 먹 10종의 방사성 탄소연대를 측정하면 시기가 1600년에서 기원전 4만년까지 다양하게 나온다"며 "방사성 탄소연대 결과를 전적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여러 의견이 오갔지만, 증도가자의 진위에 대한 결론은 나지 않았다.
황정하 청주고인쇄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은 "증도가자 문제는 원초적인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며 "소장 경위와 유통 경로를 밝힌 다음에 활자의 진위를 논의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고 말했다.
psh59@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