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낙훈씨 "아버지 유골도 못 찾아…명절이면 더 그리워"
(의정부=연합뉴스) 최평천 기자 = "추석 때 돌아오신다고 했는데…. 75년이 지나도 오지 않으시네요. 아버지가 언제 돌아가셨는지도 모르고 유골이 없어 제사도 못 지냅니다."
경기 의정부에 사는 최낙훈(77)씨는 올해 추석도 아버지를 향한 사무친 그리움 속에 지내야 한다.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으로 끌려갔다 행방불명된 아버지가 아직도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해서다.
최씨의 아버지는 태평양 전쟁이 한창이던 1942년 일본 후쿠오카(福岡) 현 미야와카(宮若)시 가이지마(貝島) 탄광에 강제 징용됐다.
최씨는 1일 의정부 자택에서 가진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익숙해질 만도 하지만 명절 때만 되면 아버지가 더욱 그립다"고 울먹였다.
일흔을 훌쩍 넘어 백발의 노인이 된 최씨는 인터뷰 내내 부친의 사진을 어루만졌다.
그는 "유골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가묘도 만들지 않았다"며 "돌아가신 어머니 산소에서 추석 때 차례를 지내며 아버지에 대한 예도 함께 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명절 하면 가족이 모두 모여 웃고 떠들고 노는 풍경이 떠오르지만, 우리 가족에게 추석은 아버지를 찾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그리움이 더욱 커지는 날"이라고 덧붙였다.
최씨가 부친의 행적을 찾기 시작한 것은 1990년 초부터였다. 홀어머니 밑에서 가사를 돕고 농사를 지으며 어렵게 지내다 건설현장에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건축업을 시작하고 나서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긴 때였다.
이후 일본도 수차례 다녀왔다고 한다. 2005년에는 일제 강점기 때 아버지가 일본에서 보내온 사진 한 장을 들고서 부친의 흔적을 찾아 나섰지만 사진 한 장만으로는 일한 곳이 어디인지 찾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나마 2014년 일본의 한 시민단체가 일본 정부의 기록을 발견한 덕분에 부친이 가이지마 탄광에서 10개월 동안 일했다는 점을 알게 된 것이 전부다.
최씨는 "당시 연락을 받고 드디어 자식 된 도리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찼다"며 "바로 가이지마 탄광으로 가서 아버지를 추도하는 제사를 지냈다"고 떠올렸다.
가이지마 탄광까지는 찾았지만, 부친의 마지막 행적은 여전히 알 수 없는 상태다. 그는 여전히 부친의 유골을 찾겠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최씨는 "일부 기록을 찾은 것만으로도 감사하지만, 아버지의 마지막 행적을 찾고 유골을 어머니 묘에 함께 모시고 싶은 욕심은 남아있다"며 "(아버지 유골 찾기는) 내가 해야 마지막 일"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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