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김희선 기자 = 리들리 스콧 감독의 SF영화 '블레이드 러너'는 저주받은 걸작으로 불린다.
1982년 개봉 당시 흥행에 참패했지만, 1990년대 비디오가 대중화하면서 재평가됐고, 결국 SF영화 걸작의 반열에 올랐기 때문이다.
개봉 당시 난해하다는 이유로 제작자에게 작품을 가위질당했던 스콧 감독은 이후 자신의 뜻대로 재편집한 감독판을 5차례나 내놓았다.
오는 12일 국내 개봉하는 '블레이드 러너 2049'는 35년 만에 나온 '블레이드 러너'의 속편이다. 2019년을 배경으로 암울한 미래를 그렸던 전편으로부터 30년이 흐른 뒤인 2049년을 담아낸다.
전편을 연출한 스콧 감독이 제작자로 나섰고, '시카리오:암살자의 도시'(2015), '컨택트'(2017) 등으로 찬사를 받은 드니 빌뇌브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빌뇌브 감독은 전편의 세계관과 철학적 질문들을 이어가면서 이를 더욱 확장하고 심화시킨다. 암울한 미래 도시를 구현한 영상과 음악 역시 전편의 분위기를 유지하면서도 한층 강렬하고 풍부해졌다.
영화는 2019년과 2049년 사이 일어난 변화를 자막으로 간략하게 설명하면서 출발한다.
리플리컨트는 타이렐사가 외계 식민지 개척을 위해 제작한 복제인간이다. 하지만 이들이 연이어 반란을 일으킨 후 생산이 금지되고 타이렐사는 파산한다.
생태계가 붕괴하던 2020년 중반, 합성농법으로 기아를 해결하며 실력자로 부상한 니안더 월레스(자레드 레토 분)는 타이렐사를 인수해 순종적인 리플리컨트 신모델을 제작한다.
인간과 리플리컨트가 뒤섞여 살아가는 2049년, 남아있는 구모델 리플리컨트를 찾아 제거하는 임무를 맡은 경찰인 블레이드 러너 'K'(라이언 고슬링 분)는 임무를 수행하던 중 리플리컨트와 자신을 둘러싼 엄청난 비밀을 발견하고 자신의 정체성에 의문을 품게 된다. 그는 이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오래전 블레이드 러너로 활약했던 릭 데커드(해리슨 포드 분)를 찾게 된다. 전 우주를 식민지화하려는 음모를 지닌 니안더 웰레스 역시 이 비밀을 포착하면서 K와 맞서게 된다.
주인공 'K'는 인간에게 복종하면서 감정을 갖지 않도록 끊임없이 제어되는 리플리컨트다. 하지만 그는 인공지능(AI) 홀로그램인 조이(아나 디 아르마스 분)와 같이 살면서 그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또 자신이 발견한 리플리컨트에 관한 비밀이 자신과도 관련돼 있음을 직감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에 의문을 품고 고뇌한다.
전편에서 인간인지 리플리컨트인지 모호했던 릭 데커드의 정체성 역시 속편에서도 속 시원히 밝혀지지 않는다. 새로 등장하는 웰레스도 정체성에 의심이 가는 캐릭터다.
전편과 마찬가지로 인간은 이분법적 사고로 인간과 복제인간을 진짜와 가짜로 나누고 이들을 지배하려 한다. 하지만 속편에서는 이처럼 인간과 복제인간, 진짜와 가짜, 선과 악의 경계는 더욱 모호해지면서 결국 허물어져 버린다.
2049년을 담아낸 영상은 암울한 잿빛 도시를 형상화한 전작의 색채와 분위기를 이어가면서도 거리를 떠다니는 거대한 홀로그램과 3D 옥외 광고판 등을 통해 한층 강렬해졌다.
라이언 고슬링은 자신의 정체성에 의문을 품고 고독한 추적에 나서는 주인공 'K'의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구현해낸다. 35년만에 릭 데커드로 돌아온 노장 해리슨 포드의 안정적인 연기도 극을 탄탄하게 받쳐준다.
빠른 호흡의 SF 액션 블록버스터를 기대한 관객이라면 다소 느린 호흡으로 163분간 전개되는 묵직한 이 영화가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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