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의사소통 새 지평 열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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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김기훈 기자 = "'야민정음'이 과연 우려할만한 한글파괴 현상일까요? 세종대왕께서 본다면 벌컥 화를 내실까요?"
한글날을 하루 앞둔 8일 서울대 관악캠퍼스에서 만난 박진호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이런 질문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한국어 문법론이 주전공인 박 교수이지만 그는 언어적 규범의 틀을 벗어난 야민정음의 발랄한 상상력을 옹호했다.
박 교수는 최근 교내 언론에 야민정음에 관한 글을 써 적잖은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 글에서 그는 야민정음을 '발랄한 문자놀이'로 규정하며 역기능보다는 순기능에 주목했다.
야민정음은 온라인상에서 어떤 단어의 글자를 모양이 비슷한 다른 글자로 바꿔 쓰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대통령'을 '머통령'으로, '박근혜'를 '박ㄹ혜'로 적는 것이 야민정음이다. 또 '귀엽다'는 '커엽다'로, '대전광역시'는 '머전팡역시'로도 표기된다.
야민정음이라고 이름이 붙은 것은 주로 야구 팬들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이런 표기 방식이 유행했기 때문이다. '야구갤러리'와 '훈민정음'을 합한 말인 셈이다.
박 교수는 "본래 문자라는 것은 의사소통의 편의를 위해 음성을 충실히 나타내고 그 뜻을 알 수 있으면 그만"이라며 "하지만 야민정음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시각적 혼동을 이용해 문자를 비틀어 사용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박 교수는 "야민정음은 일부러 다른 문자를 사용하되 원래 그 자리에 있어야 할 문자를 추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유희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야민정음의 문자 유희는 단순히 한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日本'을 '티本'으로 적는 데서 보듯이 한자와 유사한 한글을 찾아 쓰기도 하고 '비버'를 '뜨또'처럼 눕혀 쓰는 사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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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교수는 야민정음을 통해 자신의 언어관도 풀어냈다.
그는 "무엇이든 규범이 있으면 규범을 벗어나려는 움직임도 상존하기 마련"이라며 "이런 일탈이 사회 문화 현상을 다양하고 풍성하게 만들기도 한다"고 강조했다.
또 "모든 문화적 산물은 창조자가 일정한 목적과 의도를 갖고 만들지만, 그 산물을 향유하는 사람은 창조자의 의도라는 범위 안에서만 이를 향유하지 않는다"고 힘줘 말했다.
소설을 읽을 때 작가의 의도와 달리 읽는다고 해서 잘못됐다고 할 수 없고, 독립적으로 해석하고 비트는 데서 새로움이 싹 튼다는 것이 박 교수의 생각이다. 한글도 문화적 산물의 하나인 만큼 다양한 활용의 길을 열어줘야 풍요로워질 수 있다고 그는 주장했다.
박 교수는 "젊은 세대가 창조자의 의도를 벗어나서 문자를 쓰는 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현상"이라며 "이는 막을 수도 없고 막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국가의 어문교육과 정책도 규제 위주를 벗어나 다양한 문자 생활을 돕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며 유연하고 포용적인 한글 사랑을 강조했다.
"야민정음과 같은 현상을 통해 한글이 자유롭고 발랄하게 활용되면 의사소통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갈 수도 있습니다. 규범에 대한 고정관념을 벗어나면 한글을 사랑하면서도 충분히 즐길 수 있게 되는 것이죠."
kih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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