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사드 보복·韓 규제 강화 '이중고'…"고용 효과 큰데 답답"
(서울=연합뉴스) 정열 기자 = 유통업계가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다.
갈수록 강도가 더해지는 유통규제 정책으로 국내에서는 성장세가 정체된 데다 최근 수년간 활로를 모색하기 위해 너도나도 진출했던 중국 시장에서도 안착에 실패하며 짐을 싸는 경우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9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대형마트 업계 1위 이마트는 1993년 1호점을 선보인 지 24년 만인 올해 처음으로 신규 점포를 내지 않기로 했다.
전국에 146개 점포를 운영 중인 이마트가 올해 처음으로 신규점을 내지 않는 것은 시장이 어느 정도 포화 상태에 이른 데다 대형마트 규제를 대폭 강화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 등의 영향으로 출점 자체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국내 대형마트의 시조(始祖)격인 이마트가 처음으로 신규점을 내지 않는 것은 한때 고속성장을 거듭하며 '유통업계의 총아'로 대접받던 대형마트 성장시대가 저물어가는 상징적 현상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마트는 갈수록 유통업계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는 현실을 고려해 내년에도 신규 출점을 하지 않는다는 방침이다.
이갑수 이마트 대표는 최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현재 이마트가 처해있는 상황이 나쁘다"며 "국내에서는 비효율 점포 개선에 힘쓰고 중국 매장은 연내에 모두 정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1997년 중국에 진출한 이마트는 한때 현지 점포가 26개에 달했으나 갈수록 적자가 쌓이면서 2000년대 초반부터 구조조정을 통해 매장을 정리해왔다.
현재 남은 6개 매장도 연내에 모두 매각할 예정이다.
이마트는 지난해에만 중국에서 216억원의 손실을 보는 등 2013년부터 작년까지 4년간 영업적자만 1천500억원이 넘는다.
이마트는 지난 6월 22년 전에 개장해 노후화된 부평점을 매각하고, 시흥 은계지구 부지도 정리하는 등 성장세가 정체된 국내 사업도 구조조정하고 있다.
중국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의 표적이 된 롯데마트의 상황은 더 나쁘다.
롯데마트는 사드 보복으로 인한 중국 사업 피해 확대 여파로 올해 상반기에만 962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빈사 상태에 처한 중국 사업을 살리기 위해 운영자금 7천억원을 긴급 수혈했지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결국 견디다 못한 롯데마트는 중국 사업을 접기로 하고 골드만삭스를 매각 주관사로 선정해 현지 점포의 매각을 추진 중이다.
'유통업계의 터줏대감'격인 백화점 업계도 상황이 좋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통계청에 따르면 백화점 업계의 올해 1월 소매판매액은 작년 동기 대비 1.5% 하락했고, 2월과 3월에도 각각 5.6%, 3.5%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4∼5월에도 각각 -2.2%, -4.6%로 마이너스 성장세를 벗어나지 못했다.
백화점이 갈수록 사양산업이 돼 가고 있기 때문이다.
롯데백화점은 지난 1∼8월에 작년 동기 대비 매출 신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달이 여섯 달이나 됐다.
1월과 3월에만 반짝 플러스로 돌아섰을 뿐 2월과 4∼8월이 모두 마이너스 신장세를 기록했다.
백화점 업계 1위인 롯데백화점이 이처럼 심각한 매출 부진에 시달린 것은 20년 전 외환위기 이후 처음이다.
현대백화점도 사정은 비슷해 지난 8개월 중 플러스 성장을 기록한 달이 1월과 3월, 6월 등 석 달에 불과했고, 나머지 다섯 달은 마이너스였다.
롯데백화점과 현대백화점은 최근 이런 상황이 반영된 '어닝쇼크' 수준의 2분기 실적을 발표했다.
롯데백화점과 롯데마트 등을 운영하는 롯데쇼핑은 올해 2분기 영업이익이 작년 동기보다 49% 급감한 873억원이었고, 현대백화점도 2분기 영업이익이 691억원으로 작년 동기보다 11%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치권은 갈수록 강도가 세지는 규제 정책만 쏟아내고 있다.
유통업계와 정치권 등에 따르면 정부와 여당은 복합쇼핑몰도 의무휴업 대상에 포함하고 영업시간도 제한하는 내용 등을 담은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을 마련해 이달 내에 국회에 발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개정안은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복합쇼핑몰과 같은 대규모 유통시설에 대한 출점을 도시계획단계에서부터 검토하도록 규정해 지금도 어려운 대형 유통매장의 신규 출점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워질 것으로 업계는 내다보고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새로운 성장 활로를 찾기 위해 진출했던 중국 시장에서는 쫓겨나다시피 하고 있는데, 국내에서의 규제는 강화 일변도로만 가고 있다"며 "유통업은 고용 효과가 큰 산업인데, 정작 정책은 일자리 창출과는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어 답답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passio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