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민 교수 "연구 어려웠던 막단백질·바이러스 구조도 밝힐 수 있어
글로벌 제약사, 2∼3년 전부터 이 현미경 이용 신약 개발중
(서울=연합뉴스) 신선미 기자 = 2017년 노벨화학상 수상 업적인 '초저온전자현미경기법'(cryo-electron microscopy)은 생명현상에 관여하는 단백질 등 생체분자의 구조를 원자 수준에서 세밀하게 살펴볼 수 있는 방법이다.
4일 노벨위원회는 자크 뒤보셰 스위스 로잔대 교수, 요아힘 프랑크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 리처드 헨더슨 영국 케임브리지대 MRC(의학연구위원회) 분자생물학연구소 교수 등 3명을 올해 노벨화학상 수상자로 발표하면서 "생화학 분야의 새 지평이 열렸다"고 평가했다.
전자현미경은 1930년대에 개발돼 여러 분야에 쓰여 왔으나, 생체분자 관찰에 이를 응용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있었다. 고속으로 가속된 전자의 파장은 가시광선의 파장보다 훨씬 짧기 때문에 전자현미경을 이용하면 광학현미경보다 훨씬 정밀한 관측이 가능하다. 아주 조그만 것을 상세히 들여다볼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기존의 전자현미경 기법으로 생체 세포를 관찰하면 강한 전자빔 탓에 세포가 파괴되어 제대로 관찰이 되지 않았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한 것이 이날 노벨상 수상자로 결정된 3인의 업적이다.
1980년대 초 뒤보셰 교수는 진공상태에서 단백질을 빠르게 얼려, 자연상태의 모양을 그대로 유지하는 방법을 처음 고안했다. 이를 통해 매우 낮은 온도에서 전자현미경으로 단백질의 구조를 관찰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프랑크 교수는 1975∼1986년 전자현미경으로 얻은 2차원 이미지를 연구에 적합한 3차원 이미지로 만드는 방법을 개발했다.
헨더슨 교수는 1990년대 전자현미경으로 세균 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원자 수준에서 분석할 수 있을 정도의 고해상도 이미지를 얻어냈다. 헨더슨 교수의 성과로 전자현미경을 단백질 구조 연구에 쓸 수 있는 가능성이 입증됐다.
극저온전자현미경은 이들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점차 발달해, 2013년부터 원자 수준에서 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얻을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다.
이전에도 엑스선 결정 분석법(X-ray crystallography), 핵자기공명(nuclear magnetic resonance·NMR) 등 방법이 존재했지만, 시료 준비가 까다롭거나 분자량이 매우 큰 단백질에는 적용할 수 없다는 등의 한계가 있었다.
초저온전자현미경은 이런 한계를 극복하면서도, 단백질의 구조를 비교적 빠른 시간 안에 쉽게 풀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노벨위원회는 특히 세계를 위협했던 지카바이러스의 단백질 구조를 몇 달 만에 풀어낸 것은 초저온전자현미경의 발견 덕택이라고 강조했다.
작년 4월 미국 퍼듀대와 국립보건원(NIH) 산하 국립알레르기전염병연구소(NIAID) 공동연구진은 2013∼2014년 지카바이러스 감염 환자에서 얻은 시료를 초저온전자현미경으로 촬영해 이 바이러스 입자의 3차원 이미지를 얻는 데 성공했다.
당시 이 바이러스의 구조는 뎅기열바이러스, 웨스트나일바이러스 등 플라비바이러스 속의 대체로 유사했지만, 바이러스가 세포에 침투하기 위해 세포의 문을 여는 '열쇠' 역할을 하는 표면 단백질에 차이가 있음을 밝혀냈다. 만일 지카바이러스의 표면 단백질을 막을 수 있는 물질을 개발한다면 지카바이러스가 사람 세포에 침투하지 못하게 하는 '신약'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김호민 카이스트 의과학대학원 교수는 "이 초저온전자현미경은 최근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단백질 구조분야의 기술로, 2015년 국제학술지 '네이처 메서드'(Nature Methods)에서 '올해의 기술'로 선정한 바 있다"라며 "기존에 연구하기 어려웠던 막단백질 및 채널단백질의 구조는 물론이고 바이러스의 구조까지 밝힐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막단백질은 신약의 타깃이므로, 글로벌 제약사들은 2∼3년 전부터 이 현미경을 이용해 막단백질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s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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