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총리, 전당대회 연설 중 코미디언에게 '해고장' 받는 수모

입력 2017-10-05 00:03  

英 총리, 전당대회 연설 중 코미디언에게 '해고장' 받는 수모

코미디언 "존슨 외무장관이 주라고 했다" 말한 뒤 끌려나가

메이, 에너지가격 정부 개입, 공공주 건설 재개 선언…서민에 '구애'




(파리=연합뉴스) 김용래 특파원 =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6월 조기총선 패배를 사죄하는 연설 도중 한 코미디언으로부터 '해고장'을 받는 수모를 당했다.

BBC 등 영국언론에 따르면 메이 총리는 4일(현지시간) 맨체스터에서 열린 보수당 추계 전당대회 마지막을 장식하는 연설 중 연단으로 다가온 한 남성으로부터 'P45'라고 적힌 종이를 전달받았다.

이 남성은 기업의 해고 통보문인 'P45' 서류를 메이 총리에게 전하면서 "보리스 존슨 외무장관이 주라고 했다"고 말한 뒤 당 사무국 직원들에 의해 밖으로 끌려나갔다.

이 남성은 사이먼 브로드킨이라는 이름의 코미디언으로 확인됐다.

총리를 당황케 한 갑작스러운 이 '퍼포먼스'는 메이 총리가 지난 6월 조기총선에서 의회의 과반 의석을 잃고 리더십에 심각한 타격을 입은 상황과 내각 '2인자'인 존슨 장관이 최근 메이 총리와 대립각을 세우는 것을 빗댄 일종의 '정치풍자'였다.

존슨 장관과 메이 총리는 최근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방식을 놓고 극명한 견해차를 보이며 갈등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잠시 당황한 메이 총리는 코미디언이 끌려나간 뒤 "내가 이 P45 문서를 주고 싶은 사람은 제러미 코빈(제1야당인 노동당 대표)"이라고 임기응변으로 대처해 당원들로부터 환호성과 박수를 받았다.

하지만 메이 총리는 이후 계속되는 기침으로 연설의 맥이 자주 끊겼고, 연단 뒤쪽에 '모든 이들을 위해 일하는 국가 건설'이라는 전당대회 슬로건의 글자가 떨어지는 등 다소 산만한 분위기에서 연설을 마쳤다.

연설장에서 끌려나간 브로드킨은 업무방해 등으로 경찰의 조사를 받을 예정이다.




메이 총리의 이날 연설은 코미디언의 퍼포먼스로 주의가 분산되기는 했지만, 영국 정부가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라 그 파장이 주목된다.

정부와 집권당이 물가난 등으로 등을 돌린 서민층 유권자들을 겨냥해 전기·가스 등 에너지요금의 상한제와 대규모 공공주택 건설 카드를 꺼내 들었기 때문이다.

메이 총리는 "우리는 자유시장을 좋아하지만,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는 행동에 나설 것"이라면서 "(에너지) 독과점 기업들과 기득권 세력에 행동을 취하겠다"고 말했다.

영국 정부는 6개 대기업이 시장의 85%를 과점하고 있는 에너지 시장에 가격상한제를 도입해 물가안정을 꾀한다는 계획이다.

메이 총리는 자유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예로 에너지 부문을 꼽고 가격상한제가 천정부지로 치솟은 에너지 가격의 '바가지'(rip-off)를 끝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영국 언론들에 따르면, 영국의 가구당 에너지 지출은 지난 10년간 갑절로 치솟아 현재 연 1천200파운드(170만원 상당) 수준에 육박한 상황이다.

또한, 메이 총리는 대규모 공공주택 건설을 통해 주택난 해결에 나서겠다는 구상도 밝혔다.

1970∼1980년대 마거릿 대처 총리 재임 이후 국영기업들을 대거 민영화하고 정부의 시장개입을 자제해온 영국에서 정부가 에너지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공공주택 건설을 재개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이런 조치들은 7월 메이 총리가 이끄는 보수당이 조기총선에서 참패해 다수당 지위를 상실하고 총리 본인이 정치적 수세에 몰린 것을 중산층과 서민층의 표심을 확보해 만회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메이 총리는 이날 조기총선 참패의 잘못을 시인하며 사죄를 구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이 이끈 보수당의 총선 캠페인이 "너무 경직됐고 너무 지배하려고 했다"면서 "죄송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각료들에게는 심기일전을 당부하는 한편, 서민층의 일상적인 삶에 초점을 맞추고 정책을 펴자고 강조했다.

yongla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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