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작가 네이선 사와야, 한국서 첫 전시 '디 아트 오브 더 브릭'
"매달 수십만 개 레고 주문…장난감으로 예술품 만드는 것에 자부심"
(서울=연합뉴스) 정아란 기자 = 2004년 3월 미국 뉴욕의 한 법률사무소에서 일하던 31살 남자 변호사가 사표를 냈다. 앞길 창창한 젊은이의 "장난감을 갖고 놀겠다"는 '사직의 변'에 상사들은 놀라워하거나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3년 뒤 전직 변호사는 랭커스터미술관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손톱만 한 크기의 알록달록한 레고 조각으로 만든 것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작품들에 사람들은 단박에 매료됐다.
13년 뒤 세계 최고 레고 예술가가 된 네이선 사와야(44) 이야기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 아라아트센터에서 첫 내한 전시 '디 아트 오브 더 브릭'(The Art of the Brick)을 여는 작가를 12일 전시장에서 만났다.
이 평범한 장난감이 작가에게는 어떻게 특별한 존재가 된 것일까. 그는 레고와 처음 마주했던 유년의 기억부터 끄집어냈다.
"여느 아이들처럼 저도 5살에 레고를 처음 선물 받았죠. 10살이 됐을 때 부모님에게 애완견을 사달라고 했는데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갖고 있던 레고 모형을 부숴서 실제 동물 크기의 레고 조각을 다시 만들었어요."
레고로 종이상자에 그려진 자동차나 헬기, 건물이 아니라 "나만의 것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한 것이 그때였다. 그는 대학에 입학하고 변호사가 된 이후에도 레고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여기서 생기는 궁금증 하나. 취미로 레고를 즐기는 '덕후' 변호사로 살 수도 있었던 것이 아닐까.
"법률사무소에서 일할 때 레고 웹사이트를 개설했는데 레고로 이러이러한 것을 만들어 달라는 주문이 늘더라고요. 온종일 업무를 한 뒤, 밤마다 뉴욕의 아파트에서 주문 제작에 매달렸죠. 그러다 어느 날 주문이 폭주해서 웹사이트가 다운됐어요. 이제 레고 전문가로 나서야겠다고 생각했죠."
사표를 던지면서도 "아파트 월세나 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막연한 불안감이 있었다. 3년 전 첫 개인전을 할 때도 "처음이자 마지막 전시가 되지 않을까"는 생각과 함께 자신감을 잃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기술 연마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80만 개 레고 브릭으로 쌓아올린 '공룡'처럼 직육면체로 유연한 형태를 만들 수 있게 된 것도 그 덕분이다.
현재도 매달 수십만 개의 레고 조각을 주문한다는 그는 '레고' 기업의 최대 고객이 분명해 보였다.
"항상 패드를 들고 다니면서 어디에서나 스케치하는 것도 중요하죠.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온전히 완성된 모습을 상상한 다음에 작업에 돌입하죠. 몇 주간 작업하다가도, 아니다 싶으면 망치랑 끌로 깎아내기도 하고요. 많은 인내가 있어야 하는 작업이에요."
작가는 양손을 들어보면서 "설치나 운반 등을 지원하는 팀이 있지만, 레고 브릭을 쌓는 것만큼은 이 손으로 한다"고 강조했다. 남다른 손재주에는 틈날 때마다 교량 등을 디자인했던 토목 기술자 아버지의 영향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90점이 출품된 '디 아트 오브 더 브릭'은 10여 년에 걸친 작품 활동 전반을 감상할 수 있는 자리다. 세계 순회전인 이 행사는 이미 200만 명이 관람했고 CNN이 반드시 관람해야 할 전시로 꼽기도 했다. 지난해 백악관에도 그의 작품이 전시됐다.
그는 첫 개인전 이후 지난 10년간 작업 활동의 변화로 "초창기에는 연필이나 사과 등 직접 본 것을 만들었다면 이제는 아방가르드하고 초현실적이면서 인간 감정을 표현하는, 좀 더 창의적인 작업을 할 수 있게 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 핵심인 '디비전'도 그런 변화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100여 개가 넘는 손이 뻗어 나온 위로 인간 형체를 한 조각들이 떠다니는 모습에 절로 눈길이 간다.
작가는 "한반도 분단을 겨냥해 서울에서 처음 공개한 것은 아니지만, 분열이나 분단 대신 희망에 방점을 두고 만든 작품"이라고 말했다.
"남녀노소 누구나 흔하게 갖고 노는 장난감으로 예술 작품을 만들었다는 점에 기쁨을 느낍니다. 우리가 미술관에서 다비드상을 보고 감탄하지만, 집에 가서 대리석으로 한 번 만들어 봐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잖아요? 그러나 제 작품을 보면 집에 가서 레고로 한 번 나도 만들어 봐야겠다고 생각할 수 있죠."
전시는 내년 2월 4일까지. 배우 지진희와 송윤아가 오디오가이드 녹음에 참여했다. 전시 문의 ☎ 1588-5212.
ai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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