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기억상실로 수사 난항, 현장에서 주운 사이드미러가 열쇠
(군산=연합뉴스) 정경재 기자 = 사건은 지난 8월 26일 오전 4시 16분께 발생했다.
아직 동이 트지 않을 무렵 황모(70)씨는 평소와 다름없이 전북 군산시 한 종교시설로 발걸음을 옮겼다.
철길 건널목을 건너던 그는 갑자기 앞이 노래지면서 차가운 바닥에 그대로 고꾸라졌다.
잠시 뒤 자리에서 일어난 황씨는 온몸에 극심한 통증을 느꼈다. 치아도 7개나 빠졌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왜 이렇게 큰 상처를 입었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아픈 몸을 이끌고 귀가한 황씨는 "누가 아버지를 이렇게 만들었느냐"는 아들 물음에 아무것도 대답할 수 없었다.
경찰은 아들 신고로 수사에 나서 황씨가 사고를 당한 철길 걸널목 주변에서 폐쇄회로(CCTV)를 발견했다.
쉽게 사건 실마리가 풀릴 것이라는 경찰의 예상과 달리, 다른 방향을 비춘 CCTV에는 사고 장면이 담겨 있지 않았다.
다시 현장을 찾은 경찰은 수색 끝에 바닥에 떨어진 검은색 사이드미러를 수거했다.
경찰은 황씨가 뺑소니 사고를 당한 것으로 보고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피해자 옷에 대한 감식을 의뢰했다.
그 결과 황씨 옷에서 희미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타이어 자국을 발견했다는 소견을 받았다.
경찰은 수거한 사이드미러와 타이어 자국을 토대로 지역 카센터를 일일이 돌며 탐문에 나섰다.
카센터 주인들은 "사이드미러와 타이어 자국 모두 국내 한 자동차업체에서 만든 SUV 차량의 것으로 보인다"고 입을 모았다.
경찰은 다시 CCTV에 주목했다.
황씨가 사고를 당한 그 시각 주변을 비춘 화면에는 검은색 SUV 한 대가 철길 건널목으로 향하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수사 시작 한 달여 만에 황씨를 치고 달아난 뺑소니 차량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경찰에 붙잡힌 박모(43)씨는 "차에 무언가 부딪힌 느낌이 났지만 사람을 친 줄은 몰랐다. 날이 어두워서 사람이 있는 줄도 알지 못했다"고 범행을 부인했다.
그러나 경찰은 박씨가 황씨를 차로 치고 고의로 달아난 것으로 판단했다.
경찰 관계자는 "박씨는 사고 직후 보험처리를 하지 않고 정비소에서 자비로 사이드미러를 수리했다"며 "확보한 여러 증거에 비춰볼 때 박씨가 교통사고를 내고 달아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군산경찰서는 특가법상 도주치상 혐의로 박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라고 13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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