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용의 글로벌시대] 빈곤퇴치의 날에 생각해보는 가난 해결책

입력 2017-10-17 07:30  

[이희용의 글로벌시대] 빈곤퇴치의 날에 생각해보는 가난 해결책



(서울=연합뉴스) 이희용 기자 = 1987년 10월 17일 프랑스 파리의 트로카데로광장. 1948년 12월 10일 세계인권선언이 발표돼 '인권과 자유의 광장'이라고도 불리는 이곳에서 10만 명이 운집한 가운데 '절대빈곤 퇴치운동 기념비' 제막식이 열렸다. 비석에는 "가난이 있는 곳에 인권침해가 있다. 인권을 보호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다"라는 글귀가 새겨졌다. 이날 행사를 주도한 이는 조제프 레신스키(1917∼1988년) 신부였다.


프랑스 앙제의 가난한 이민자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1946년 천주교 사제로 서품된 뒤 1956년 파리 인근의 난민 캠프에서 사목활동을 하다가 이듬해 난민들과 함께 빈곤 퇴치를 위한 모임을 결성했다. 이것이 훗날 국제비영리단체 'ATD(All Together in Dignity to Overcome Poverty) 제4세계'로 발전했다. 레신스키 신부는 "가난한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옷과 음식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이라고 강조하며 빈곤 퇴치와 빈곤에 대한 인식 개선 운동에 앞장섰다. 1992년 유엔은 레신스키 신부의 뜻을 기려 그가 파리에 기념비를 세운 10월 17일을 '국제 빈곤 퇴치의 날'(International Day for the Eradication of Poverty)로 정해 매년 기념행사를 치르고 있으며 1996년 뉴욕의 유엔정원에 복제 기념비를 세웠다.




세계은행이라고 불리는 국제부흥개발은행(IBRD)은 하루 평균 1.9달러(약 2천420원) 이하로 생활하는 사람을 빈곤층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 기준은 1.25달러였다가 2015년 상향 조정된 것이다. IBRD가 2016년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세계의 빈곤 인구는 1990년대 이후 꾸준히 감소 추세를 보여 1993년 인류의 33.5%인 18억5천500만 명에서 20년 뒤인 2013년 7억6천700만 명(10.7%)으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아동들의 현주소를 보면 여전히 참담하다. 세이브더칠드런이 지난 6월 1일 세계아동의 날을 맞아 발표한 보고서는 하루에 1만6천여 명의 아이가 5번째 생일을 맞기도 전에 숨지고, 5세 미만 아동의 25%인 1억5천600만 명이 영양실조로 신체적 성장과 정서 발달 저해를 경험한다고 고발하고 있다. 전 세계 취학 연령 아동 6명 가운데 한 명꼴인 2억6천300만 명이 학교에 가지 못하고, 유럽의 전체 아동 숫자보다 많은 1억6천800만 명이 노동을 하고 있으며, 7초마다 15세 이하 여아가 결혼하고 있다. 이런 현상의 가장 큰 원인은 빈곤으로 지목된다.




이에 따라 유엔은 2000년 9월 뉴욕 유엔본부에서 191개국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밀레니엄 정상회의를 개최해 2015년까지 빈곤 인구를 절반으로 줄이는 것을 비롯해 교육 보급, 여권 신장, 질병 퇴치 등 8가지 새천년개발목표(MDGs) 달성에 노력하기로 약속했다. 그 결과 5세 미만 영유아 사망자 수를 2000년 970만 명에서 2015년 590만 명으로 줄이고 초등학교 취학률을 15년 만에 83%에서 91%로 높이는 등 적지 않은 성과를 거뒀으나 분쟁과 기후변화 등으로 인한 난민은 오히려 늘어났다. 유엔은 2015년 총회에서 MDGs 성과를 보고받은 뒤 빈곤 퇴치, 기아 종식, 불평등 감소 등 17가지 지속가능개발목표(SDGs)를 새로 정해 2030년까지 추진하기로 결의했다.


절대빈곤의 기준이 1.9달러지만 부탄이나 중국 서남부에서는 하루 1달러 미만으로도 큰 불편 없이 살아가는가 하면 미국에서는 하루 수십 달러를 쓰면서도 상대적 빈곤에 허덕이기도 한다. 빈곤의 원인도 한두 가지로 잘라 말하기 어렵다. 빈곤은 부존자원이나 통치 체제에 영향을 받기도 하고 전쟁이나 자연재해가 갑자기 초래하기도 한다. 사회구조적 원인에 무게를 두는 시각과 개인의 게으름이나 무기력이 문제라는 주장이 대립해온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빈곤의 기준이 각기 다르고 원인에 대한 해석이 엇갈리다 보니 빈곤 퇴치를 위한 대책도 다양하다.





빈곤은 나라 밖의 문제만은 아니다. 지난해 기준으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163만 명에 이르며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 복지 혜택을 받지 못하는 비수급 빈곤층도 93만 명을 헤아린다. 사회 양극화는 갈수록 심화하고 있으며 불평등 지수도 선진국 가운데 가장 높은 미국을 곧 추월할 전망이다. 민달팽이유니온·전국빈민연합·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50여 개 단체가 참가한 '1017 빈곤철폐의 날 조직위원회'는 지난 14일 오후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앞에서 가두 행진을 펼쳤다. 참가자들은 DDP에서 종로와 광화문사거리를 지나 세종문화회관 앞까지 행진하며 장애등급제 폐지, 노점상 강제철거 중단, 공공주택 확충과 전·월세 상한선 도입 등을 촉구했다. 이어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빈곤철폐의 날 투쟁대회'를 열고 "빈곤은 국제기구의 한시적인 구호나 원조로 퇴치되는 것이 아니라 불평등과 빈곤을 심화시키는 사회구조에 맞서 가난한 이들이 함께 힘을 모아 싸울 때 철폐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17일에도 대구와 부산에서 기자회견과 가두 행진에 나선다.



'가난은 구제는 나라님도 못한다'는 속담이 있지만 예로부터 가난 구제는 나라의 책무였고 복지국가는 현대사회의 이상이다. '가난 구제는 지옥의 늪'이란 말이 있으나 오래전부터 자선은 인간의 도리이자 천국행 열쇠라고 믿어왔다. 개인의 노력 없이 빈곤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고 일회성 도움보다는 구조적 빈곤 원인을 없애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해도 당장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으면 밥을 굶고 목숨을 잃는 사람을 외면할 수는 없는 일이다. 더욱이 우리는 불과 반세기 전 남들의 도움으로 굶주림을 겨우 면하고 남들을 도와줄 위치에 올라서지 않았는가. 빈곤퇴치운동 기념비 제막 30주년과 국제 빈곤퇴치의 날 제정 25주년을 맞아 나라 안팎의 빈곤층을 돌아보고 빈곤 퇴치에 힘을 보탤 방법을 고민해보자.



heeyon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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