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회삿돈을 빼내 자택 수리 공사비로 쓴 혐의(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배임)를 받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에 대해 경찰이 16일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조 회장은 서울 종로구 평창동 자택의 인테리어 공사가 진행되던 2013년 5월부터 2014년 1월 사이 공사비용 중 약 30억 원을 대한항공 소유의 인천 영종도 그랜드하얏트호텔 공사비에서 빼돌려 지급한 것으로 경찰 조사에서 드러났다. 그룹의 시설담당 조 모 전무도 회삿돈 유용에 관여한 혐의가 짙어 함께 구속영장이 신청됐다. 경찰은 "조 회장이 주요 피의자로 증거가 있는데도 혐의를 부인하는 등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있다"고 신청 사유를 밝혔다. 경찰은 조 회장의 부인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도 같은 혐의로 조사해 불구속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할 방침이다.
경찰은 조 회장 자택 인테리어 공사업체의 탈세 혐의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영종도호텔의 자금 일부가 공사비로 흘러들어 간 정황을 포착, 지난 7월 초 대한항공을 압수 수색했다. 이어 지난달 19일에는 조 회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재벌 총수가 비리 혐의로 경찰에 소환된 것은 2007년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아들 보복 폭행' 사건 이후 10년 만이라고 한다. 경찰은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있는 삼성그룹 일가의 자택 인테리어 공사에서도 차명 계좌 수표가 대금으로 지급된 정황을 잡고 자택 관리사무소를 압수 수색하는 등 수사를 벌이고 있다. 경찰은 삼성 측 관계자가 공사업체를 상대로 이런 행위를 했다면 업무상 횡령과 조세범 처벌법 위반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조 회장의 배임 혐의는 우리나라 재벌 총수의 부도덕한 민낯을 또 한 번 보여줬다는 점에서 씁쓸하다. 작은 회사도 아닌 재벌 회장이 회삿돈을 쌈짓돈처럼 빼내 쓴 것은 일반인들을 허탈하게 만들 만하다. 엄연한 범죄라는 점에서 사실로 확인된다면 엄중히 처벌받아 마땅하다. 조 회장 일가의 범법 행위는 처음도 아니다. 조 회장은 1999년 항공기를 도입하면서 받은 리베이트로 비자금을 조성하고 탈세한 혐의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장녀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은 2014년 미국 뉴욕에서 벌어진 '땅콩 회항' 사건으로 큰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 당시 조 전 부사장은 재벌 일가의 전형적 '갑질' 행위로 국민의 지탄을 받았다. 구속기소 된 조 전 부사장은 1심에서 징역 1년을 받았으나, 2심에서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으로 석방됐다. 현재 상고심이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잊을 만하면 터지는 재벌 총수 일가의 이런 일탈은 재벌개혁 목소리를 높일 수밖에 없다. 재벌은 상류층으로서 국민 앞에 모범을 보여야 한다. 더 자중하고 조심할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최근 선정한 '세계 최고의 고용주' 순위에서 ㈜LG가 10위에 오른 것은 반가운 소식이다. 포브스는 세계 58개국 2천 개 기업을 대상으로 회사 이미지, 근무환경, 다양성 등을 평가해 500위까지 순위를 매겼는데 한국 기업으로는 유일하게 ㈜LG가 10위 권에 들었다. 투명하고 깨끗한 경영을 하면 우리 기업도 얼마든지 세계 유명 기업 수준의 호평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 입증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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