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상하이 대표주자 한정도 최고지도부 상무위원단 입성 유력

입력 2017-10-17 11:04  

中상하이 대표주자 한정도 최고지도부 상무위원단 입성 유력

상무부총리·정협주석 거론…'세다리' 걸친 경력이 최대장점

(상하이=연합뉴스) 정주호 특파원 = 중국 최고지도부 진출이 유력하게 거론되는 한정(韓正·63) 상하이시 서기는 중국의 경제수도 상하이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 계열의 인맥에 공산주의청년단(공청단)을 거친 경험, 그리고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상하이 서기 시절 맺었던 인연까지 겹쳐져 정치적 색채가 불분명한 점이 오히려 최대 장점이 됐다.

상하이 시장 시절 시진핑과 위정성(兪正聲) 등 세 서기를 거치면서 무난한 관계를 맺고 장쩌민 일가와도 친밀한 관계를 이어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그의 정치국 상무위원 발탁은 그래서 당 내부계파간 타협의 산물로 읽힐 수 있다.

한 서기가 정치국 상무위원에 올라갈 경우 재정 담당 상무부총리나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政協) 주석 등을 맡게 될 것으로 예측된다.

한 서기는 저장(浙江)성 츠시(慈溪)현이 원적으로 1954년 4월 상하이에서 태어났다. 외모는 귀공자 풍이지만 1975년 말단 창고관리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는 주경야독으로 상하이 화둥(華東)사범대 야간대 등에서 학업을 병행하며 경제학 석사학위를 마쳤다.

관직에서 기회도 장쩌민 계열 주룽지(朱鎔基) 전 총리에 의해 주어졌다.

1987년 상하이 서기 겸 시장이었던 주룽지가 신발공장 시찰에 나섰을 당시 부공장장이었던 한정은 단번에 주룽지의 눈에 들었다. 한정은 이후 공청단 상하이시 부서기로 발탁됐고 이듬해 공청단 상하이시 서기가 됐다.

그렇다고 해도 한정을 후진타오(胡錦濤) 전 주석의 권력기반인 퇀파이(團派)로 분류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상당수 고위직들이 공산당 입당 전후에 공청단에 입단하는 것이 보통이기 때문이다.

평생을 상하이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던 그는 자연스럽게 상하이방(上海幇·상하이 출신 정·재계 인맥)의 주자로 여겨졌다. 실제 장쩌민이 상하이시 서기를 지낼 당시 한정은 우방궈(吳邦國), 쩡칭훙(曾慶紅), 황쥐(黃菊), 천량위(陳良宇), 멍젠주(孟建柱) 등 쟁쟁한 상하이방 인사들과 함께 있었다.

한정은 2003년초 49세의 나이에 상하이시 12차 인민대표대회 1차회의에서 높은 득표율로 상하이 시장에 당선됐다. 상하이 50년 역사상 가장 나이어린 시장이었다.

2006년엔 당시 천량위(陳良宇) 전 상하이시 서기가 사회보장기금 비리 사건으로 정직 처분을 받고 조사를 받을 당시 한정도 연루됐다는 소문이 나왔으나 당시 중국 지도부는 한정으로 하여금 상하이시 서기 자리를 대행토록 했다.

되레 그에게 신임을 주고 요동치는 상하이 정세를 안정화시키는 역할을 맡긴 것이다.

2007년 3월 저장(浙江)성 서기에서 상하이 서기로 이동해온 시 주석에게 한정은 겸임하던 서기 자리를 넘겨주면서 난처한 처지가 됐으나 상사가 된 시 주석을 전력 보필했다. 공개 행사에서는 항상 시 주석의 옆에 서 힘을 실어줬다.

당시 시 주석은 상하이가 익숙지 않았던 까닭에 상하이통인 한정 시장에게 상당히 의존해야 했다. 시 주석도 상하이시 서기 재임 8개월동안 한정 시장에 신임을 보내며 그의 업무역량에 대해서도 긍정 평가했다.

일본 요미우리(讀賣)신문이 한정의 정치국 상무위원 진출을 점치면서 그를 시진핑 계열의 인맥으로 분류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 주석이 중앙으로 옮겨간 뒤 당시 위정성(兪正聲) 후베이(湖北)성 서기가 상하이시 서기 자리를 잇게 되자 한정은 위정성에게도 적극적인 협력을 아끼지 않았다. 두 사람이 합심해 2010년 상하이 엑스포를 성공적으로 치르고 경제모델 전환의 진통기에 상하이 경제를 안정적으로 이끌었다는 평을 들었다.

2013년 위정성이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승진, 정협 주석으로 올라간 뒤에야 한 서기는 마침내 보좌역을 끝내고 대리 꼬리표가 붙지 않은 상하이시 서기에 6년만에 복귀했다.

2012년 시 주석 집권후 상하이에서는 장쩌민 계열 인맥의 제거 움직임이 끊이지 않았고 실제 시 지도부는 점차 시진핑의 친위세력들로 바뀌어갔다. 한정이 장쩌민파로 간주돼 불리할 것이라는 소문이 끊이지 않았지만 결국 살아남아 최고지도부 입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여기에는 시 주석과의 관계도 있지만 장쩌민의 물밑 지원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장쩌민 일가와도 비교적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장쩌민이 상하이에 확보한 정치경제적 네트워크를 관리해주고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에 따라 한정의 정치국 상무위원 진출은 시진핑이 장쩌민 계파와 타협하면서 중국 공산당 내부에 최소한의 권력균형을 이루는 무게 추 역할을 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하지만 정작 상하이시 지도부는 장쩌민에서 시진핑으로 물갈이된다.

지난 1월 상하이시장 자리는 장쩌민 계열의 양슝(楊雄)이 물러나고 즈장신쥔의 잉융(應勇)이 뒤를 물려받았다. 19차 당대회에서 한 서기가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승진해 중앙으로 옮기게 되면 잉융 시장이 서기 자리를 물려받고 상하이시 당위원회를 이끄는 5인 소조는 모두 시진핑 인맥으로 채워질 전망이다.

하지만 2006년 천량위 낙마, 황쥐의 사망과 함께 상하이방 세력은 점차 기울기 시작했고 2012년 시진핑 등극후엔 급전직하 추세다. 하지만 중국의 경제중심이면서 만만찮은 정치적 세를 과시하는 상하이가 장쩌민 세력의 최후 방어선이라는 점에서 쉽게 무너지지는 않을 전망이다.




jooh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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