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단체는 집회할 때 왜 성조기를 들고나올까

입력 2017-10-18 10:41   수정 2017-10-18 10:53

보수단체는 집회할 때 왜 성조기를 들고나올까

재미 정치학자 남태현 교수 '세계의 정치는 어떻게 움직이는가' 출간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지난해 말과 올해 초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수많은 시민이 촛불을 들었다. 그러나 한쪽에서는 대통령을 옹호하며 성조기를 들고 광장에 나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왜 그들은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는데 성조기를 들고나온 것일까. 그들의 심리가 이해되지 않았던 사람들이라면 신간 '세계의 정치는 어떻게 움직이는가'(창비 펴냄)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을 듯하다.

미국 솔즈베리대 정치학과의 남태현 교수는 이 책에서 사람들의 행동 뒤에 정치 이데올로기가 있음을 지적하며 정치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관련이 있는지를 설명한다.

정치 이데올로기란 '한 집단이 지향하는 이상적 사회의 모습과 그 사회를 이루기 위한 주된 방법에 대한 비전'을 의미한다.

책은 대표적인 정치 이데올로기들을 소개하며 현실에서 이데올로기와 정치가 어떤 영향을 주고받는지 살핀다.

이 중 우리 상황에서 특히 관심이 가는 부분은 보수주의에 관한 내용이다.

저자는 한국 보수주의의 핵심 가치를 '반북'(反北)과 '경제발전'이라고 규정한다.

보수주의자들은 정부 수립을 '공산주의를 단호하게 거부한' 정치적 산물로 보는 만큼 대한민국을 '태생적 반공국가'로 간주한다. 반공을 국시(國是)로 삼았던 군사정부가 들어서며 북한과의 체제경쟁에 불이 붙었다.

체제경쟁의 핵심에는 산업화가 있다. 산업화 이전에는 북한 경제가 남한보다 앞서 있었지만, 산업화 드라이브를 통해 상황이 역전됐다. 그런 까닭에 보수주의자들에게는 북한과의 체제경쟁에서 앞설 수 있는 경제성장을 이뤄낸 군사정부가 자랑스러운 존재가 되는 것이다.

반북과 경제성장을 엮는 고리는 미국이다. 보수주의자들에게 미국은 한국전쟁에서 한국을 구했고 주한미군을 통해 안보를 책임졌고 다양한 형태의 경제원조로 한국의 산업화를 도운 존재다. 미국은 단순히 고마운 존재가 아니라 반북과 경제성장이란 보수의 핵심 가치를 지켜낼 수 있게 해준 존재인 셈이다.

저자는 성조기가 보수단체의 탄핵 반대 집회에 등장한 데 대해 "보수주의의 배경을 이해하면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라며 "보수단체들의 집회에 성조기가 나부끼고 미군의 존재가 당연시되고 매번 미국산 무기를 사고 별말 없이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승인하고 반미는 자동으로 종북이 되는 등의 일은 이런 보수 이데올로기가 사회적으로 발현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책은 이 밖에도 중국과 티베트 분쟁 뒤에 자리한 민족주의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갈등의 배경이 되는 시오니즘, 같은 사회주의를 내세웠지만 성공한 스웨덴과 실패한 베네수엘라의 사례 등 오늘날 뉴스의 배경이 되는 정치 이데올로기들을 설명한다.

책은 어떤 정치 이데올로기가 옳다 그르다 이야기하지 않는다. 다양한 물건이 많고 가게도 많은 시장이 좋은 시장이듯, 정치 이데올로기 시장도 다양할수록 좋다고 말한다. 소위 '수구꼴통'이 없는 사회나 '종북좌빨'을 내쫓은 사회 모두 온전하게 굴러갈 수 없다며 '종북좌빨이든 수구꼴통이든 대립되는 의견을 지닌 사람들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한국 정치이데올로기 시장은 과점도 아닌, 독점에 가깝게 왜곡된 상황이라고 지적한다. 경쟁이 없으니 보수 이데올로기가 발전할 필요가 없고 정치 논의가 반북, 경제발전, 종미에 머무르는 수준이라며 대안을 모색한다.

388쪽. 1만8천원.

zitron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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